2008년 12월 29일 월요일

Janus의 초상

序詩

肉이 살아 숨쉬는 동안 魂은 서서히 죽어갔고
느즈막히 소생의 날을 바라던 어느날의 내 몰골.
좁은 이마에 겹겹이 골을 판 죽음의 늪으로
차가운 기운이 스치니 오늘은 숨을 끊고 肉을 떠나는 신세.
암흑의 땅속에서도 살아있던 동안의 자유는 너무도 벅찼음을 안다.
옻내음만이 유일 樂.
肉이 썩고 흙속의 살점은 물이 되고
시간이 끊기지않는 無念의 하루에 죽은자 소리 없는 곡성을 띄운다.


하 나



겨울과 함께 방황의 도화선에 불이 당겨진다. 잠자고 있던 권태와 덥석 악수를 나눈 후 모든 사물은 가치상실이라는 중병을 앓게된다. 무엇을 위해 살았던가? 무엇 때문에 스스로 속박이라는 제도를 아무 불평없이 받아 왔던가? 자신의 현 생활과 혼을 동일 시하는 이런 삶의 태도로 죽음이라는 부조리가 싹터 온 것은 아닌가? 사고의 한 구석에서 조그만 기정사실로 자라왔던 virus를 관찰해 보자. 망상 자실적 실태속에서 조형된 넋잃은 망혼들 흔들리는 지축이 정신을 잃고 자리를 빼앗긴다. 시신,망념,상실한 자아... 망연자실.이런 퇴폐속에서 순수의 날은 서서히 먼지가 쌓여가기 시작했다.정신세계의 냉혹한 현실에서 어떤 보장도 받지 못한 채 내쫓기는 더부살이의 신세처럼 육체는 곤두박질 당하여 스스로를 미로 속으로 끌고 들어 간다. 방황의 궤적.생활인의 자아상실증은 현실이 빚어낸 통속적인 부산물이 되었다. 그것은 단단함과 이질감으로 똘똘 뭉친 신비를 맛보지 않고서는 치유가 불가능 하다. 한 생활인에 있어서 절망이란 바로 이 신비의 영감을 뭍어 버리는 것이다. 자유의지의 행동양식을 몰수 당하는 것은 곧 죽음을 선언하는 것이고 자살이라는 필연을 동반 한다. 현실은 이를테면 지친 정신과 병든 육체 사이를 끊임없이 왕래하며 진행되는 신비의 나날이다. 자신을 알기 전에 느꼈던 무논리 속의 자부심은 도리어 강압적인 자신속의 암울한 그림자에 의해 그 존재가 여지없이 부정당함을 느낀다.완전한 무방비 상태에서 독화살을 맞은 것처럼 치명적 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처방을 찾으려 하지도 못하고 마치 천명처럼 자신의 상실을 정당화 시키고 무한의 죄책감을 전해 받는다. 하루를 덜 살아도 이런 고통은 받고 싶지 않았다. 무지에 가까운 아집으로 인해 오류의 수렁은 점점 깊어만 간다. 진리가 품고있는 외부와 내부의 이 괴로운 적대관계는 납으로 치장된 수의처럼 무척이나 거추장 스럽다.
급기야 오늘 제단에 올린 비방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한다. - 내 사는 동안의 떼어 버릴 수 없는 태로 인해 나는 어딘 가에 소속되어야 합니다. 혼의 사멸이 있기 전에는 죽을 수 없는 나 다움을 위해-이런 혼돈 속에서 모든 것이 속죄양처럼 죽음으로 떠밀려 간다.
꽉 채워진 이십의 젊음이 서서히 죽는다.절망의 도화선은 쉽게 점화되어 깊숙이 자리한 화약고를 향해 줄달음 친다.죽어야만 하는 이십의 젊음. 한번의 거부의 몸짓도 던지지 못한 채 도리어 향연이라도 벌리는 양 그 젊음은 기꺼이 죽어간다. 전생에 존재하던 무한의 시간에 ' '라는 20의 숫자가 더해졌을뿐 실로 20의 意味는 별 것이 아니건만 오늘 죽어도 하나 더러울 것없는 20의 나이에 연연해 하는 肉의 피. 영겁동안 독방에 갖혀있던 한 인간에게 바늘구멍을 통해 들어온 햇살의 습격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사고의 외도는 급격히 성장하여 발정한 숫캐처럼 눈알이 충혈된다. 말은 시작이요 생각은 끝이라는 말장난으로 세치의 혀는 말을 타서 뛰기 시작한다. 기수없이 뛰는 말은 그저 말이요, 사고를 떠난 순결잃은 처녀성이었다. 껍데기로 내용물을 들어내려하는 이 가증스런 행위에 사고는 불순한 언어의 목발을 집고 싶지않은거다. 그러나 다른 한면으로 보면 사고라는 놈 마저도 바보같은 논리로 전개되는 자신의 전부를 회피하려는 결벽증환자는 아닐런지? 싫지만 싫을 수만은 없고, 저주하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그것을 무척이나 아끼는 것. 뒤죽 박죽된 생각으로 돌고있는 생활. 탈출할 수 없는 반복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조율하고 그 상승된 思考를 통해 자기 자신과의 접근을 두려워 하며 엉금엉금 기어가는 꼴이란 겁탈한 놈팽이의 위풍 당당함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면이 아닐런지. 색안경 낀 세상사. 완전한 혼란의 나날. 어떤 놈은 허물지 못하는 자기의 城 안에 기거하는 모든 이에게 이런 말을 한다. 파괴가 아니라 도리어 문을 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 자기와 보이는 타인을 동일시 할 수 없다는 관점의 장벽에 부딪쳐 모든 것을 거부한다고. 사실은 모든 것을 음흉하게 부정하는 옹골찬 진리가 있건만 내 세상은 좁고 사고가 편협하다는 허울 좋은 변명으로 남들을 안심 시킨다. 그들은 여기에 눈물을 준다. 하여 모든 것은 正道를 걷고 있다고 한다. 자신있게. 속으로는 눈물로 노아의 방주를 지으면서도... 무질서의 파괴와 단조로움. 새 질서의 창조에서 생동을 찾고 싶다는 소박함이 도리어 순수하다. 한동안의 구속에서 자신의 해방을 찾았다는 착각은 태초의 자유에 한점 독을 뿌리고 만다. 끝없는 투쟁. 몸을 가눌 수 없는 혼란한 세상. 녀석의 치기는 시작 되었다. 혼란이 정돈 되어있는 듯한 야릇한 상태. 그러나 어떠한 정돈도 찾을 수없는 보이지 않는 세계. 이것이 완벽한 정돈. 녀석은 나를 이런 혼란으로 유도한다."양심은 모든 것을 혼란으로 섞어 놓는다."술로 물을 먹는 녀석의 첫 소리에 나는 적지않이 놀란다."양심은 혼란의 씨앗이리라."녀석의 후렴은 양심으로 길을 놓는다."벙어리의 소리는 메아리가 없다. 양심의 혼란을 소리의 단절로 극복하여 완전한 정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돈 속에서 신음이나 음향으로 발하여 끊기는 소리의 절규를 혼란으로 오인해서는 아니 된다. 볼품없다는 그 하나의 이유로 사물의 진리 성마저 외면해서는 아니 된다. 정돈과 혼돈의 가역반응으로 이루어진 세계. 이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지하 생활의 시작이요 암흑으로 채색한 순수의 나날이다. 살아 있는 자들의 타버린 양심을 떠나 농아의 진실을 들어라. 메아리 없는 외침. 고막을 찢는 진실의 소리를 ..." 녀석은 여기서 잠시 말을 끊는다. 말(馬)없는 포장마차 안에 다섯 사람. 녀석과 나, 40대의 포장집 주인, 술 취한 젊은이 둘. 카바이드 불꽃을 향해 달려드는 하루살이에 녀석의 눈길이 멈춘다."詩人의 양심은 일찍부터 떼어 버려야 한다." 이어지는 녀석의 말은 힘이 없었다."흥미를 찾아 헤매는 사탄에게 야심을 준다고? 더러운 새끼들!""천재성에 녹이 끼기 전에는 그래도 가장 인간다운 인간들이다. 순수를 부르짖으며 살려는 정신적 도도함에 어느 누가 부끄럽지 않을까? 자신의 행위와는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말에 책임을 지려하는 자들이 시인이 아닐까? 인간의 속성에 실망하면서도 결코 동화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세상의 끝에 시간의 한숨 소리가 있기 전에는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시인들은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넋두리를 늘여 놓는지 모르지. 神의 편애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을 꺼야. 누구나 시적인 심성은 가지고 있지만 결코 그 능력을 알지 못하고 죽는 이 들이 대부분 아닐까? 시인은 이 때문에 신의 아들이라 자부 할 수 있는 것이고. 예수도 시인이지. 그 당시의 군중들은 이를 받아들일 능력이 없었기에 그를 거부했을 지도 모를 일이야. 사탄에게 접근하여 양심의 혼란을 불러 일으켰을 예수의 노래는 위대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을 것이 분명해. 하여튼 시인의 양심은 세상을 바로 보는 프리즘으로 계속해서 존재해야 할 것이고..." "무엇 때문에 삶의 고민을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지?空으로 떠도는 말꼬리에 무슨 意味가 있다고 묵시의 나날을 보내는 것일까?자신도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그의 속성 파악이 우선 과제가 아닐까?자네가 말하는 정신적 도도함으로 지구라는 땅 덩어리를 짊어질 수 있을까? 불쾌해! 이중적이며 결코 강하지 못하면서도 많은 사람을 오도하는 그들의 혀끝이. 살아 있는 자신의 낮은 마음의 늪도 건널 수 없는 주제에 무슨 짓들인지 모르겠어. 영근 표현 하나 쓰지도 못하는 처지에 자신들의 잣대로 세상을 다시 짓기라도 하려는 그들의 허식이 씁쓸해!""관념에 쌓여있는 생활은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지. 그러기에 방종과 나태로 살아온 것이 도리어 恨스럽기 까지 한 것이 아닐까? 삶은 완전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부르짖어 왔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정신만은 타협할 수 없다던 지난날에 비해 오늘은 부끄럽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도 자유의 구속이 아니면 불가능 한 것이고. 사실 매일 죽어가는 하루살이처럼 낱날을 보내는 우리도 삶에 어떤 의미를 더하지 못 한다면 그 순간이 바로 죽음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죽음의 순간 한으로 덮인 하늘을 생각해 보라. 아, 괴로운 호흡의 연속... 어떤 삶이고 즉흥적 일 수 없고 어떤 생각도 책임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를 묻어 버려야만 한다. 李基道 시인의 죽음은 말 할 수 없는 충격이었어,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야. 우리 시대의 양심을 잃게 되었으니 혼란이 극에 이를껄..." "혼란? 도리어 완전한 정돈이 이루어질지도 모를 일이야. 양심의 부재로 서서히 몰염치의 경지로 들어가다가 급기야는 아무도 못 듣는 무언의 시간이 세상을 지배할 테니 두고 봐!
肉은 떠나도 좋아라 魂이 춤 출 수 있다면 누추한 육이라도 더 덩실
죽음 뒤로 어떤 옷을 차려 입을까 설레며 더하는 그 순간 순간이 어둠이라도 반겨 안을 논리의 끝이기에 여기는 사고의 끝 어둠의 시작 黑. " 녀석은 이기도를 읊는다. 술잔에 눈물을 떨구며."내 세상이 좁고 사고가 편협해선지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구나. 관심 갖고 있는 사람에게 실망하고 싶진 않지만 그것은 실망을 전재로 한 새로운 관심이기도 하지. 행동의 형식화가 빚어낸 이러한 비애가 있기에 생각을 떠날 수 없는 반복적인 상황이 있을 뿐이지. 사실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기만으로 만족 할 수는 없단 말이야. 그래서 자신은 뻔히 알면서도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그들의 허세를 인정하는 거야. 그런데 그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니지. 우리의 이러한 행동은 타인 속에 있는 또 다른 자신과의 접근을 두려워하며 잊으려 하는 지도 몰라. 그래서 누구나 비밀을 소유하고 있다는 음흉한 희열로 생의 낙을 찾고 있다 고나 할까? 좌우간 이런 뒤죽박죽된 생각들 때문에 누구든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갖게 되는 것이고..." 지겹도록 빨아 데던 그 놈의 담배에 이제는 혀끝이 아려오는 느낌만 들뿐 정신조차 찾기 어렵게 되었을 때 녀석은 원수라도 때려잡듯 그 놈의 꽁초를 짓이겨 끄고 말았다."아무 말이나 해 봐라-" 도리어 살기가 도는 웃음을 자연스럽게 던지면서 녀석은 거만한 몸짓을 한다. 용의 웅비를 재현하듯, 무당의 굿거리를 연상시키듯 자기 속에 있는 기저 상태의 쾌락을 서서히 쏟고 있는 것 같다."李 시인의 말이 떠오르는 구나. 사는 것이 幻像一章一節 이라는 그의 고백 말이야. 아라비아 양탄자의 신비를 이해하는 것이 삶일 수도 있다고 했지. 신비는 범상적으로 보아 넘길 수 있지만 그런 애매함을 인정하지 않는 요즈음 사람들의 잔인함이 언제나 문학의 천적으로 남게 되는 것이라고. 소위 평론가라는 작자들이 그 작품을 감상한다는 명목 하에 詩를 난도질하고 있지. 음미하는 것으로 족한 현상에 무슨 해설이 필요하단 말이야. 주제 넘는 월권 행위들 좀 그치라지. 입에 풀칠을 위해서 라면 차라리 땅을 파라고 해. 누굴 저울질하고 누굴 칼질하는 거야. 백정 보다 비인간 적인 문학의 살인마들. 개놈의 자식들." 녀석은 흥에 겨워 선지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그저 주절거린다."아무 말이나 해 봐라-" 반복적인 행동의 관성 때문인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또 뇌깔이기 시작한다." 더러운 세상에 태어나 아무도 듣지 않는 넋두리에 오늘도 알콜입자의 노예 되어 저 멀리 날려버린 독성을 病者의 소리로 옮긴다.
여기에 恨을 한 꺼풀 더 씌우며 천하게 차려입은 의식의 옷을 벗어 던진다. 벗겨진 양심의 허물을 철저한 외면으로 대하라 오직 진실의 피로 순수를 끌어안아 보라 하여 오늘 쯤은 사는 맛을 느낄 것이다. 입에선 쇳내가 나며 목구멍은 진리의 갈증으로 시간의 끝을 고할 지라도 죽음조차 한줌 腐土의 창조이기에 달갑게 그리고 너그럽게 받아 들이라.
아집의 산을 넘어 타협의 손을 잡고 협잡의 문을 두드리니 눈은 빛을 닫는다. 부끄러운 나날에 더할 것없는 너절한 삶의 찌꺼기를 손으로 지우려니 하늘이 열린다.
말을 주으라 흩어진 思念의 조각을 벙어리의 땀으로 맹인의 눈물로 하나 하나
우주에 살아서 좋아라 끝은 다른 창조의 시작이기에 정성으로 완전한 복종으로 ..."
여느 때 보다 가련하게 자신을 붙들려는 녀석의 소리들이 나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며 전해 온다. 깨끗이 생각하고 무리 없이 살아가던 녀석이 거짓의 가면을 벗어 던진 인간으로 새롭게 일어서는 것 같다. 녀석의 소리는 회귀의 정을 무시한 채 탈출의 저항 끝에 외부로 뛰쳐나온다." 납덩어리 족쇄에 어기찬 성깔도 못 부리니 소리를 끊고 빛을 버리라.
굽어 굽어 곱사등의 傳說을
오류의 외침은 계곡의 밑을 향해 깊이 깊이 천길 아래에서 들리는 돌아오는 소리
- 병시인-"
작은 흔들림. 녀석의 하얀 부정은 율동처럼 소리 없이 바람을 타고 흐른다.침침한 눈동자. 고즈넉이 고개든 얼굴로 녀석은 그가 속한 공간을 한번 쓸어본다. 천으로 추위를 가리고 주인의 상상으로 만든 절대 공간. 녀석의 눈길은 이 공간의 다른 소유자들 넷을 천천히 쓸어 간다. 그리고 나서 합석한 다른 두 젊음의 한 곳에 이르러 히죽거린다. 그러자 그쪽에서도 응답을 하여 히죽. 녀석은 그에게 술을 권한다. 돌아오는 술잔은 그만큼 정이 넘치고.다른 한 젊음이 말을 건네온다. "형씨! 타령 하나 합시다.""좋지요-""진작에 뽑아 보려했는데 형씨들의 대화가 하도 진지하기에...""아, 그랬군요. 그러면 한 수 부탁합니다.""자, 목청을 가다듬고..." "잠깐 기다리게 이 친구야. 아무리 각설이라 할 지언정 서로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나 최형규라고 합니다."그의 인사가 있자 합석한 친구 한이 손을 내밀었다."반갑소. 나 한이석이 올시다." 나와 권상훈은 그들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우리의 소개가 있은 후 한이석이 운을 띄우려는 듯 한 마디를 더한다."자, 그러면 한 수 나갑니다."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한 마당을 읊기 시작한다." 한 사발 농주에 얼큰히 곁들인 첫날 밤 가락을 삼천궁녀 신세 조진 의자왕 상팔자를 침튀며 즐기던 날 마누라는 곁눈질로 지아비 물건을 고옵게 쓸어본다. - 내 낭군 최고 最 부자로 시집간 갑순의 첫날 고자남편 두고 밤마다 님타령 - 씨이 - 팔 긴긴 동짓밤 마른 살갗 쓸며 갑순이 운다.
눈물 마른 피멍의 가슴으로""허허, 젊은이 재미있는 가락이구려. 아직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손님이 없다 했는데 흥이 있어 그런 대로 그만 이구려. 시간이 허락한다면 오래 놀다 가시구려. 젊은이 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으니..." 이제 이 공간은 공통 분모를 찾아내어 완전한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었다.너나 할 것 없는 합일 체의 바로 그것이었다. 다섯의 원소는 융합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서로를 끌어당기려는 듯 표현을 아끼지 않고 털어 내기 시작하였다."형씨 가락 좋수다. 그러면 이 쪽에서도 한 수를 더하리다." 권상훈이 제법 흥이 돌아 어깨춤까지 추면서 목청을 튼다." 에헤헤- 에에 헤이 각설처럼 살아보세 군소리 걷어차고 밥찌꺼기 깡통차도 이 몸이 自由로네 벙거지 헐렁바지 흥얼흥얼 내 인생 눈감으면 잠자리 눈뜨면 풍악 세상
에헤헤이 에헤헤 여보게들 동참하세 미련일랑 없다하고 가마떼기 둘러차도 구질구질 내 신세 이 놈이 상팔자아- 이 놈의 세에사앙." 말의 씨앗이 각자의 사고 속으로 박혀 들어서 인지 말이 쉽게 이어진다. 담배 한 모금. 술 한잔. 큰 숨 한번 내리 쉬고 말은 달리기 시작한다."권형 좋수다. 젊음이 좋고 안주가 없어도 좋을 접시 위에 놓인 우리의 대화가.""우수겟 소리 하나 합시다." 최형규가 말을 더한다."어느 약싹바른 친구가 하늘님한테 가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더라지요. . 하느님! 하느님은 1천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음, 아마 1초면 족할껄 . 하느님! 그러면 돈 1억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음, 역시 1원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을걸 . 그러면 하느님 저 1원만 주세요 . 음, 1초만 기다리게 " 일동 웃음. 녀석은 키득키득 거리며 웃는다. 또 다른 치기를 부리려는지."우스운 구구셈을 외우듯 아주 꼴사나운 짓이군요. 神을 자신의 농담 상대로 택한 것 부터가 아주 대담하군요. 그 친구 땅에 내려와 하늘을 향해 감자를 먹였을 겁니다." 최형규가 다시 말을 받아 한마디 더한다."달나라 계수나무. 토끼는 인간에 쫓겨 空에서 방황하다가 숨을 끊었습니다. 그 곡성으로 밤마다 가위 들려 땀을 쏟는 이 아픔으로 가득한 생. 언제부터 문명인이라는 훈장으로 자신을 치장해 왔던 가요? 모든 것을 툭툭 털고 토끼의 노랫가락을 듣고 싶은데 왠지 나의 이런 속성이 싫어 숨을 확 몰아 쉬곤 하지요. 그러나 어느 하늘은 모든 소리를 깨고 토끼 잡아먹는 모습이 달무리에 비치겠지요. 제길 헐." 오랫동안 자신이 바로 토끼를 내쫓은 범인이라는 사실에 무관해 왔다. 결국 돌아온 인간들의 꼬락서니는 정복자가 아닌 실향민의 모습이었다. 세상은 보잘것없이 되었고 전설의 풍요는 그 막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몇 마디 던지고 돌아오는 소리는 네놈들 꼴은 보잘 것 없다는 것. "잠을 청하는 습관으로 내 오후 시간은 시계추 속에 묻혀 지내는 것이지요." 한이석은 웃을 기분마저 사라졌다는 듯이 선뜻 말을 하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별로 밝지 못한 실내에 쳐박혀 coffee 향을 맡아가며 살고있는 이 안도감이 하루하루를 더해가는 내 모습이던가? 바보같은 녀석들의 신청곡을 들려주고 골빈 계집들의 농을 들어주는 것. 그 모두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변사의 그것처럼 힘빠지고 흥미를 잃게 합니다. 소리라는 여인이 귀에 몇 마디를 속삭이더니 살며시 꽁무니를 빼고 도망칩니다. 반자아적 행위를 떠올리며 나는 전위를 행동으로 옮겨 봅니다. 눈물을 짜고 땀을 긁어모으고 웃음을 狗束하고 발가락에 쌓인 고린네 떼를 손가락으로 장난질 하고 귀지를 파서 훅 불어 버리고 침마른 가래를 뱉고 코를 후비고 비듬을 털고 담배꽁초를 모아 파이프 담배랍시고 허세를 부리며 처녀 퀴즈라며 계집을 농락하고... 멈추지 않는 생각들.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 각자의 속성에 묻혀 지낸다고 그것이 제대로 돌아가는 통속인가? 손가락이 11개 있으면 무슨 소리를 듣는지 아슈?병신이라고 합디다. 등에 혹이 나면 곱추라는 소리를 들으며 이유 없이 욕을 먹 곤 합니다. 이런 욕지거리를 하면서 사람들은 의혹을 갖고 곱추의 살갗을 베껴보려는 짓을 합니다. 거짓의 우리들 보다 살이 더 많겠지. 그래서 그 살갗은 더 기름지겠지. hunch back의 양심은 우리와 다릅니다. 잠잘 때 눈감는 것이 서로 다를 바 없는데도 등을 땅에 붙이지 않는 것이 그들의 양심입니다. 우리 엄마가 바로 그런 양심으로 태어났거든요. 남들은 울 엄마를 곱추라 합디다. 자라면서 이 놈은 어머니의 수모도 생각 않고 '병신엄마'라는 말을 수없이 뇌깔이곤 했지요.곱추. 곱추. 곱추....어디를 가도 따라다니는 환상의 흉터를 통해 급기야는 그 곱추의 양심을 전해 받은 겁니다. 사실 깨끗하다는 것은 항상 불안한 겁니다. 언제 물들지 모르고 언제 욕보일지 모르니 말입니다. 편하게 지내기 위해 순수를 외면해 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몰려다니는 녀석들 외에는 누구하고도 접촉을 피해왔다는 것이 바로 타인 속에 있는 자신을 찾지 못한 이유라 생각합니다. 눈 가리고 아옹하는 꼴이지요. 하이얌을 좋아하는 녀석들은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며 아둔한 놈들만 검정색 칠을 하고 얼굴을 판다고 합디다. 그래서 공갈과 질투로 잘 반죽된 거짓의 공으로 아이들은 그들의 유희를 즐기며 탁한 공기를 폣속 깊숙이 들이마시는 격이 되는 겁니다. 또 이런 친구들도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고아라며 정신적 고립을 달갑게 맞고 한줌의 부토가 눈을 덮을 때 그 정신적 고립과 방황은 끝난다며 자신의 입술을 점점 얇게 하면서 까지도 그 말의 시종을 잡지 못하는 그런 친구.그러면서도 이들은 '1+1=宇宙'라는 보편성에 사로잡혀 탈출의 돌파구를 외면한 채 그 안에 주저앉아 허탈감으로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허식의 말장난에 이제는 넌더리가 납디다. 그래서 숨이 퀙하고 막힐 때까지의 모든 소리는 슬픈 노래로 들리겠지요. 그 소리가 싫어도 대부분의 말없는 군중의 혀를 일괄적으로 자를 수는 없겠지요.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 소리 없는 아우성에 모두들 고막이 터져 버릴 겁니다. 이렇게 술을 먹고 견디기 어려울 때는 병신 엄마가 생각납니다.울 엄마 양심의 젖을 빨며 또 한번 순수의 걸음마를 배우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노랫가락이 불현듯 떠오르는 군요.......이제껏 닫혀있던 소리의 보석함에서웃음은 날개를 찾아 청아하게 날아간다......."나는 가만히 술잔을 들어 한동안 주시하고 나서 재빨리 잔을 비운다. 피해의식.예술의 그림자라고 할만큼 예술인 스스로 이 그물에 걸려든 물고기처럼 할딱거리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신주처럼 아끼는 단어. 단지 작품이라는 말을 빌지 않더라도 인생은 이런 단어를 되풀이하며 뱉지 못할 씁쓸한 맛을 강요한다.한이석은 스스로를 '짓동이'라 부른다. 스물의 문턱을 들어선 지 얼마 안되어서부터 자신의 양심이라 할 미술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한다. 다른 말을 빌어 쓰는 것이 도리어 구차할 정도로 그 친구는 이 '쟁이'라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삶의 모든 궤적이 이 짓거리를 위해 소요되는 퇴비요 양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길만이 곱추 엄마를 부르는 가장 완전한 주문이라는 것이다.한이석이 어느 정도의 휴식을 통해 사고의 재충전이 이루어진 듯 다시 사고의 끝을 찾아 이어가고 있었다."이제 실상은 더 이상 실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눈 속에 머물었던 망연자실한 물상의 기억은 곧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였던 그 기운이 어디론가 흐르고 있을 뿐 또한 알 수 없는 흐름에 휩싸일 뿐 행위 자체에서는 더이상 진리의 빛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아래를 향해 흘러가지만 고집스런 理想만이 위로 치솟기를 원하는 이 부조리. 해체된 정신을 양심의 중심 위에 띄우고자 할 때 오늘은 어제의 연속이 아니며 단순한 시간의 관성 작용. 의미 없는 그 모든 것이 의욕 없는 삶에 대한 다른 이름의 체념. 흐름을 막는 그 어떤 것도 고집으로 한 자리를 지킬 수 없기에 언젠가는 다시 어떤 쓸림에 몸을 맡겨야 하는 현실이 도리어 솔직한 고백입니다. 떠오르는 잡념을 잠재울 生의 진실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지금 하늘에 떠도는 魂을 안아 보고 싶습니다."그의 말을 빌자면 세상의 가치는 오직 감각밖에는 없는 것 같다.그 유일의 가치를 찾아서 한이석은 화쟁이가 되었고 그 짓거리를 통해서 어렴풋하게라도 혼을 느낄 수 있는 것인가? 그의 말 그대로 그는 이미 전설을 가슴에 키우며 삶을 익혀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또 이런 생각을 해본다.자신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그 찾았다는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면 소의 되새김처럼 자신이 걸어오고 지나온 길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그 확인을 반복함으로써 기억의 창고를 익숙하게 관리 할 수 있을 것이다. 녀석이 한마디를 들고 나온다. "사실 기만과 허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무엇이며 또한 삶의 의미를 인식하지도 못 한다면 내부의 울분에 목이 죄어 질식하거나 찢어지는 마음을 꿰매느라 일시적인 기만이 전 보다 더한 추한 몰골로 변해 갈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듭 해 가면서 자신은 허위의 중독자가 되어서 웬만한 자극이 아니면 반응이 불가능한 산송장이 되어 버릴지도 모를 일 입니다. 이런 일들이 나를 두렵게 합니다. 그리고 허탈감이 엄습해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관념의 현상을 떠나 실존의 순간을 확인할 때 그나마 삶은 확인의 과정으로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양심에게서 멀어 지고자 하는 안타까운 저항일 지도 모릅니다. 살고자 발버둥치는 최후의 몸부림일지도 모릅니다.""아닙니다. 살아가는 일을 그런 교활함으로 오염 시켜서는 안됩니다." 최형규가 부정의 말을 몰고 와 녀석의 앞에 세워 놓는다."젊은 날의 추행이 후에 미화 될 수도 있고 한 때의 악행이 아름답게 꾸며 질 수도 있다는 억측으로 자신의 젊음을 낭비하거나 방종으로 방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곤란합니다. 말로 지껄이는 반자아적 놀음에 진정한 위로를 찾을 수 있을까요? 인식을 외면한 참 위안이 이 세상에 있다고 봅니까? 있다고 답하신다면 그것은 허위며 기만일 것입니다. 양심이라는 것이 자기 안에 있는 한 그 양심의 절대 군주는 자신이며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물리적 압력이 여인처럼 한 순간을 지킬 수는 있지만 진리의 입을 틀어막을 수는 없습니다.그렇기에 '내 자유다' 하는 무책임한 말로 세상을 혼돈으로 몰아서는 아니 됩니다. 사는 것이 한 때는 혼자를 위한 것으로 보일 수는 있어도 허물없이 뱉은 그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다치는 사람은 정작 다른 사람 일 때가 많지요. 다른 말은 양보하더라도 '사람답게 살자'는 한 말은 양보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죽음 앞에서도 외칠 수 있는 최후의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소리 없이 몇 번의 술잔이 오고간다. 사고의 재정비라고 할까. 혼자 즐기고 혼자 괴로워하더라도 인생은 철저한 자기의 세계로 믿어왔던 내게 최형규는 사고의 뿌리를 붙들고 흔들어 놓고 있다. 외계인처럼 사고의 공간에 침범하여 이름 모를 비행체의 호기심만 남기고 날아가려 한다. '사람답게 살려면 혼자여서는 아니됩니다.'......녀석이 다시 나선다."최형의 논리에는 다분히 감상적인 색체를 느끼게 되는군요. 잘 차려입은 도련님이 오입을 하면서도 그 순간 새 색시를 떠올리는 것 같은 알량한 죄의식 같은 것 말입니다. 도련님의 죄의식의 간섭이 그를 도리어 죄책감에서 해방시킨다면 그것 자체가 퇴보입니다. 시인의 양심도 아닌데 일상의 사람에게서 그런 '답게 철학'이 얼마나 행동 규범으로 작용한다고 봅니까?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나 같은 사람에게 최후의 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논리의 비약이라 할까요?"최형규는 녀석의 반격에 한동안 대응을 않고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마치 녀석의 현실성이 최형규의 순수한 감성을 상처내기라도 한 듯. 그러나 그는 다시 의무감에서라도 녀석의 조롱에 대응을 해야 한다며 입을 열었다. "우울의 옷을 벗어 던져야 한다. 언제까지 이 幻想에 얽매어 얼래질을 해야 하는가 해 저물 무렵 세어나는 탄식에 소스라쳐 달아날 행복을 생각해 보라 부끄럽고 초라한 몰골의 내가 그보다 더 보잘것없는 魂을 바라보며 떨구는 눈물 또 눈물
삶의 마지막까지 정열로 기록하리라 던 희망의 순간 순간이 두려움과 진통의 무게에 눌려 한 마디도 외치지 못할 때 용기의 껍데기는 썩어가고 자유의 미소는 생기를 잃어 넋두리의 공허만 남으리
이십의 산을 올라 청춘의 푸른 하늘을 전설로 남기려던 그 소망이여 나를 비웃지 마오 한 날을 위해서도 눈물과 땀으로 사랑하며 순간을 위해서도 열심과 기도로 남긴 나의 숨소리를 기억해 주오. 그리하여 세상의 끝이라도 웃음으로 반기리다 彷徨하는 혼의 안식을 위해 내 기억의 花香을 위해...
뇌 암으로 죽은 동생의 마지막 글입니다. 동생을 기억으로 만나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루를 욕되게 하는 것이 동생의 죽음을 값없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나이는 어렸지만 동생은 이미 인생의 아름다움을 다 경험하고 하늘의 별로 전설을 만들었습니다."살아가는 것이 욕 되다는 최형규의 고백은 더 이상의 웅변이 필요 없는 완전한 선포였다. 그는 싸움의 처참함을 거치지 않아도 이미 위대한 승리자의 자리에서 겸손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교활하고 선동적인 언사로 군중의 무지를 자극하는 협잡꾼도 있으나 그는 조용한 언어를 선택한 참 혁명가로 남고자 한다.자신에게도 엄격한 행동으로 양심의 이탈을 막고자 고삐를 놓지 않는 그가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가당치 않는 소리로 자신을 기만하고 그보다 더한 허풍으로 타인을 농락하는 소리꾼들. 그들도 때로는 치욕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군중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돌아오는 소리의 시퍼런 칼날 앞에서 눈물의 고백을 하여야 한다. 폭풍이 지나고 잔잔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미동이나마 바다는 율동을 즐기며 숨을 쉰다. 유조선의 oil tank에 구멍이 뚫려 기름이 센다. 잠시 후 바다는 검은기름 막에 덮여 숨을 끊는다. 또 다른 폭풍이 있기 전에는 조금 전과 같은 생동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죽음. 적막으로 이어진 이 시간의 끝에 죽음의 그림자가 주인을 기다린다.반 마당의 소리에 취해 재담가 모두는 혀놀림을 중지한 듯 침묵의 포로가 된다.소리. 이 순간은 원숙한 생활인의 소리가 필요하다.이 시간에는 계집의 웃음소리가 듣고 싶다.이 때는 아이들의 칭얼거림이 도리어 흥이난다.Insert!녀석의 오줌보가 꽉 찼던지 작대기를 긋는다며 자리를 뜬다. 그래도 소리의 그림자는 자취를 감추고 끝없는 침묵의 띠를 벗어나지 못한다. 실어증으로 감염된 듯 누구도 언어를 찾지 못하는 것 같다. 한동안의 무변화를 깨고 녀석이 나타난다.허리춤을 매만지며 들어오는 그의 손에는 탈색한 신문지가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며 구겨진 얼굴을 쳐들고 있었다. 녀석은 탈출기의 한 부분을 완성하기라도 한 듯 신문지를 우리에게 던지며 침묵의 늪을 건너고자 한다."America에 갔었지. 오줌을 싸다 보니 뒤가 무거워 지더군. 내친 김에 엉덩이를 까고 앉았지. 막상 앉았지만 뭐가 나와야지. 멍석 깔아 논 기분이더군. 반 평도 안 되는 뒷간에서 무슨 생각이 그렇게도 쏟아지던지... 희미한 전등에 반사되는 화장실 벽은 박물관의 그것보다 화려하더군. 구석에서부터 훑어가기 시작했지. 낙서라기보다는 그 하나 하나가 전 입주자의 기록이었어. 의식의 편린으로 그 벽을 껴안았다고 보면 합당하겠지. 그러니 이 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나? 은밀한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가는 설래임. 생각해 보게나. 경험하지 못하면 도저히 상상이 불가능하겠지만 그거야말로 쾌감이지.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외설도 어느 정도의 도덕성이 내재하고 자체 검열을 하는지 지워진 자국이나 새로운 필치로 더해진 모습도 찾을 수 있었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즐거움을 누리다가 이걸 찾았어.
' 하나하면 눈을 감고 두울하면 숨을 틀고 세엣하면 힘을 모아 네엣하면 굵은 가락 다섯이면 밑을 닦고 다음에는 下山 하라 '
누군지 는 모르지만 꽤나 여유가 있는 녀석 같았어. 대사를 치르면서도 후세를 위해 싯구를 남긴 선조의 뜻을 살피듯 말이야. 한참동안 웃고나니 눈물이 날 정도였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수색작업을 계속 하다가 제목까지 달아 놓은 글을 발견했지.
' 記
멀리 떠난 소리가 있다.정신을 몰고 간 오래 전의 일혼자일 때 나는 이런 생각에 빠져희미한 소리의 흔적을 찾는다.
막연한 자신감에당연한 허탈을 예상하면서도귓전에 머물다가약올리며휘익돌아서는 현실의 차가운 소리 -헛수고 말고 돌아가라
空을 흐리며 지축을 흔든냉랭한 소리가심장의 중심을 놀고산만한 정신의 꼬랑지를 잡는다.그리고 전보다 더한 유혹으로내 귀를 핥는다.작은 속삭임 -공갈. 공-가-알-
그래도소리는 멀기만 하다. '
이 글을 쓴 녀석은 도도한 녀석이었어.제법 正字에 가까운 필체로 여간 주의해서 찾지 않으면 안 되는 높은 곳에 적어 놓은 걸 보면 더 분명해 지지. 잠시 사기 당한 기분으로 서 있으려니까 누군가 사정없이 문을 두드리더군. 서두르다가 밑도 안 닦고 나올 뻔했지 뭐야. 녀석의 뜻을 헤아리려고 이렇게 적어 왔으니 한번 보게나.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기도 시인의 사진과 관련기사도 함께 있으니 읽어보게나."녀석은 귀신이라도 데려온 것처럼 신이 나서 우리에게 신문지를 건네었다.구겨진 신문지에는 비교적 똑바로 옮겨 적으려는 녀석의 의도가 엿보였다. 대화의 끊긴 연결고리가 녀석의 노력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바다. 죽음의 바다에 다시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한이석이 그 바람에 잠이 깬 듯 먼저 말을 몬다."헛수고 말고 돌아가라는 소리에 이시인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요?몇 해전 초청강연에 참석한 이시인을 처음 뵈었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거의 반벙어리 같은 눌변이었습니다. 그때의 자기 고백을 이렇게 밝혔지요.'나 같은 사람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文人도 한 보잘것없는 생활인이고 자신의 세계를 남보다 그럴 듯하게 기록하려는 욕심으로 사는 까닭에 남다른 trick을 이용할 줄 아는 것 뿐 입니다. 보통 말이 없을 때는 글이 나가고 글이 없을 때는 주절거리는 것이 글쓰는 사람들의 습관이지만 어떤 음모 때문인지 나는 그 범주에 들지 못합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문인을 보셨습니까? 위대한 음모로 인해 언젠가는 몰락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살을 예고한 그의 강연이 섬뜩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시인의 죽음에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위대한 음모라기 보다는 초라한 죽음에 지나지 않습니다."상훈의 단정적인 문장에 우리는 자세를 달리 해야 했다. 그는 죽은 자의 무덤을 찾아 가서라도 그의 비겁을 따지려는 듯 시인을 꾸짖었다."의식의 고갈로 애매한 변명만 던지고 도망친 선동가의 최후를 보셨습니까? 생기없는 언어의 재탕으로 누구에게서도 시선을 집중할 수 없었던 그가 택한 결정이 곧 죽음 입니다. 그래야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것이지요. 끝까지 사람답게 죽지 못한 치사한 생활인. 그의 죽음이 그를 아끼던 사람에게는 행동의 시로 보일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조차 누구의 말대로 전부 공갈일 뿐입니다."한이석은 상훈의 부정적 사고에 객관성을 더하여 시인의 죽음을 이해하려 한다."그 정도로 죽을 李시인이었다면 아무도 그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한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대중에게서 똑같은 연민을 느낄 수는 없으니까요. 이시인 스스로가 말한 것처럼 그분도 생활인이었습니다. 한 생활인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극한 상황이란 그리 쉽게 오는 것도 아니며 죽음을 실행하는 일조차 여간해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분히 환상적인 동기였다면 詩 자체가 환상인데 무엇 때문에 죽음을 택했을 까요? 이시인의 사생활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주위의 문인들 모두가 한결같이 그를 딸깍발이라 하지 않습니까? 재정적인 곤란 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모르는 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죽음으로 이어지기까지의 염세적인 요소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지요.""이시인의 부인이 불구자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 아닙니까?"최형규는 부인의 불구가 마치 사건의 단서라도 되는 듯 정색을 하며 끼어든다."남편의 지극한 정성도 불구의 현실을 극복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선천적 소아마비를 하늘이 감복하여 치료해 주지는 않았으니 까요.""하지만 이시인의 성격이나 평상시의 표현대로라면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설령 성적으로 불만이 쌓였다면 생활인으로 오입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좌우간 그의 죽음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의문점이 한둘이 아닙니다."한이석이 최형규의 의문에 그 깊이를 더하여 준다. 사랑하던 시인의 죽음은 내게 있어 연인과의 이별이며 그리움의 병이었다."그를 잃어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시달릴 겁니다. 이 시대의 양심으로 문단을 이끌어온 한 시인의 죽음. 40대의 타협 없는 목소리. 그의 소멸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닌 인기인 속에 있던 보편적 자아의 몰락이라고 생각합니다."나의 斷想에 한이석이 토를 달며 등을 두드린다."유족으로는 그 불구의 미망인 한 사람 뿐이고 다른 친척은 없답니다. 이시인은 세상과는 인연이 없는 비생활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말 ' 죽어 이름마저 썩다'는 무척이나 시사적입니다. 여하튼 그의 죽음이 한 시대의 손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혼란과 어둠이 우리 시대를 한동안 지배할 것입니다." 상훈의 반격을 예상하면서 나는 술잔을 비우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부정의 칼날이 혀끝을 지나 입술 밖으로 나온다."혼란보다는 도리어 완전한 정돈이 우리의 앞을 기다릴 겁니다. 혼돈을 초래하던 고등방정식의 미지수가 사라졌거든요. 몇 마디 지껄여 보겠습니다. 말은 끊겨도 의식의 고리까지 끊어진 것이 아니니 인내로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자아의 도피현상.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완전한 멸망이 기대감을 박탈하여 암담한 미래를 강요한다. 그리하여 무작정 달려가는 백치의 백마.가는 철사가 있다.몸을 칭얼칭얼 감고도 그 나머지는 정신의 외도를 막기에 충분하다.다방 구석에 앉아 시간을 죽인다. 그것이 젊음의 유일한 풍요이기에.speaker를 통해 탈출하는 소리의 희열에 한번쯤은 웃음을 더한다.아침에 살짝 뿌린 눈을 밟는 발의 촉감이 새롭다.빈곤한 사유.오래 전에 떠났던 말이 사고의 편린으로 되돌아온다.긴긴 칩거의 날로 왜소해진 몰골.도수 맞지 않는 안경을 걸치고 흥얼거리는 초점 잃은 소리들.dead mask의 변화 없는 표정을 읽는다.헛소리로 주절거리던 말꾼들이 혼란의 죄를 피해 이 가면을 뒤집어쓴다.양심의 혼돈이 드디어 평온을 찾아 아기의 잠을 청한다.꿈.소학교 시절 꼰대들의 심부름으로 열나게 드나들던 local 전매청을 향해 뱉은 소리.- 죽을 놈은 연기의 香을 맡고 죽으리ぉかね가 없다는 느낌으로 인생의 樂은 반감한다.음침한 피해의식의 기저상태를 뒤흔든 사건.한 시인의 갑작스런 죽음.생활을 어디에 의지하며 끌고가야 하는가.길지 않은 인생.しまい된 삶의 소리는 여운이 없다.경험 없는 사기치기.재수 없이 잡혀간 초범의 한결같은 소리.- 사회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수다. 눈물겨운 변론으로 살아난 주변의 삶.그의 하루는 다시 시작하여 낭비 없는 소리를 수집한다.나는 그의 땀에 반하고 그의 새 하루를 따라간다.소리를 잃었던 주변의 삶이 고압의 언어를 누른다.논리의 생경함에 시간이 살아 움직인다. 이기도의 소멸로 완전한 정돈을 이룬 것입니다.혼란을 일으키던 미지수는 이제 사라진 겁니다."이럴 때 온건한 반기를 들고 일어서는 사람이 없다면 녀석의 논리가 우리에게서 술을 빼앗고 사고의 질식을 유도할는지 모른다. 단편적 언어의 파편이 파괴력을 발휘하여 어떤 논리의 개입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연속적인 어떤 시도가 있기 전에는 이 상태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마침내 최형규가 변호를 맡아 녀석의 상대로 나선다."권형!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대화는 양심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세대간의 gap 까지 매도해 버리려는 우를 범하려 합니다. 예를 들어 40의 양심을 대신한다고 할 때 누군가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야 하며 그것이 보편성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의 관심은 양심이지 규범을 허물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론의 기회마저 빼앗아 버린다면 소리의 정의를 기대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의 양심을 누군가는 대신 할 수 있어야 하며 바라기는 그 누군가가 같은 시대를 살아온 40의 소리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20의 제가 죽은 이의 양심이 될 수 없는 이유는 40의 시인이 내 속에서 나로 살수 없는 그 이유와 다를 바가 없을 것. 처음 우리의 접근 대상은 어떤 세대의 변명이 아닌 절대적 양심이었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길은 처음의 그것이 아니니 당혹 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돌발적 사태치고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많이 있습니다. 경우를 달리 해서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지금 제가 자살을 했다고 합시다. 어른들은 대뜸 내 판단 부족과 인내의 결핍이 나의 자살을 부추켰다 하실 겁니다. 어느정도 저를 이해하시는 분일지라도 자살의 책임은 자신이라는 말로 현상의 단면을 결론 내리려 할겁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부분적 설명일 수는 있어도 전부를 이해 시킬 수 없습니다. 이 때 20의 제 친구들은 곡을 하며 나의 죽음을 서러워 할 겁니다. 또한 죽음의 비밀을 이해하여 망자의 자리에서 떠나려 하지 않을 것. 간단하고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세대간의 gap을 떠나서는 우리의 어떤 노력도 이기도 시인의 죽음을 파헤칠 수 없다고 봅니다.""그 점에 있어서는 나도 형규의 말에 동감합니다. 과부 홀아비 사정을 안다는 옛말도 있듯이 상황이나 처지를 나누지 않은 동정이란 구두 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인식론보다는 경험론의 철학이 설득력이 있습니다."한이석이 최형규의 말에 무게를 실어주며 녀석의 어두운 생각을 바꾸고자 한다."뒤가 급해 뒷간에 갔습니다. 누구에게나 늘 있는 일이지요. 볼일을 다보고 밑을 닦으려니까 휴지가 없더군요. 누구에게도 일어 날 수 있는 흔한 일이지요. 고민만 할 수 없어 소리를 질렀지요. 대답을 바라고 지른 소리지만 반응이 쉽게 오지는 않더군요. 한참 후에 누군가 휴지를 가져 왔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 였을까요? 제가 20이라서 20의 나이가 가져다주었을 까요? 아니면 그 상황을 경험했던 전 입주자가 가져다주었을 까요? 이런 이야기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지만 그가 누구였는가는 아마도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게 형씨들의 말에 무조건 반대해야 하는 병적인 기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세포적인 사고로 쉽게 어떤 결론을 지으려 했던 저의 불찰이 도리어 창피한 일이지요. 하지만 세상은 그런 이해심이나 너그러움으로 충만한 곳이 아닙니다. 불구자를 받아들이는 따뜻한 곳도 아니며 선남선녀들이 모여사는 낙원은 더욱 더 아닙니다. 아무런 무리 없이 살아갈 때 어떤 불규칙의 현상이 일어나면 십중팔구는 그 현상을 외면하려고 의식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가시라는 표현을 쓰면서 불편한 그것을 떨쳐 버리려 하는 것. 상황의 외면으로 마음의 평정이나 생활의 리듬을 유지한다면 그것이 도리어 진리가 아닙니까? 사실은 저도 진실을 듣고 싶습니다. 무엇이 이시인의 죽음을 강요하였는지 말입니다. 제 생각을 성벽으로 방어 하려는 것이 아니고 편견의 신봉자도 아닌 이상 어리석은 오만을 버릴 자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나는 녀석의 말에 적지않이 놀랐다. 무척 겸손한 어조로 이시인을 받아들이려는 그의 자세 뿐 아니라 오를 수 없는 환상의 산을 오르는 모습이 눈에 비추었던 것이다. 산에 오르면서 비밀의 광맥을 일부러 막아버리는 몸짓. 세상을 전복할 수 있는 그런 음모를 흉중에 숨긴 것도 보인다. 나는 사고의 재정비를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현상을 통해 즉물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술병의 숫자를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빈 소주병이 일곱 개나 되었고 아직 반 이상 남아있는 병이 두개 더 있었다. 알코올에 익사할 정도로 마셨지만 정신은 도리어 명료하기만 하였다. 포장마차를 지키던 주인을 인식하게 된 것은 한참만의 일 이었다. 과묵한 그의 표정에는 도리어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 것 같았다. 40대의 그가 이시인의 절친한 친구였다면 어떤 말로 우리의 허를 찌를까? 말은 없었지만 우리의 대화는 이 40대의 남자의 귀에서 어떤 식으로도 요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술손님이라고는 아까부터 죽치고 있는 우리와 한잔 씩 걸치고 귀가하는 뜨내기 손들이 전부였다. 분주하지도 않았고 정신을 딴 곳에 둘 필요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저 담담하게 우리를 주시하다가 가끔씩 뜨거운 국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었다. 작은 공간 속에서 일방적인 대화를 이끌어 가는 젊은이를 그는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이런 표정이나 행동이 그를 대화의 당사자로 끌어 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형규의 말대로 이시인을 대변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사람일 것 같다. 그의 표정과 그의 외모를 읽어 가면서 조금 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사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사십의 포장집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직업이 어색할 정도로 기품이 있었고 생활의 침식보다는 도리어 당당함이 그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에게 심상치 않은 무엇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해졌다. 조갈이 나자 나는 습관처럼 담배 한대를 물었다. 그의 시선이 강렬한 이유는 우리의 대화가 아닐까?상상의 세계를 가로질러 최형규의 말이 달려온다."지난번에 만원 bus를 타고 가다가 생긴 일인데 갑자기 생각나서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겨우 사람의 숲을 헤치고 앞에 있는 엔진통 근처에 조그만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지요. 그 엔진통 위에는 촌티나는 소녀가 앉아 있었고 간간이 운전기사가 그 아이를 향해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대화였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오가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아이는 수습 안내원이었고 기사는 이 어린 소녀에게 삶의 경험을 지혜롭게 전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 돈을 벌려고 서울에 오는 것이 아니란다. 여기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찰하면서 저렇게 해서는 아니 되겠다 하며 마음을 다지는 곳이란다. 되어먹지 못한 자들이 돈으로 자신의 인격을 삼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곳이 바로 서울이니 잊지 말거라. 너도 돈을 벌고자 왔지만 열심히 사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돈에 환장하면 몸 망치기 일쑤니까 돈보다는 양심껏 살도록 하여라. 양심껏 사는 것이 돈을 모으려고 자신을 파는 것보다 좋은 일이고 후회 않을 일이니 잊지 말아라.''네. 아저씨 고맙습니다. 명심해서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짧은 대화였지만 코끝이 찡하더군요. 서울의 정체를 알려주던 그 기사가 굿이 서울을 떠나지 않는 이유도 공감이 가고 양심껏 살라던 그 한마디가 제 가슴에도 와 닿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어른이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어떤 의미가 있다는 그 말이 실감나지 않습니까? 그 말에 정신이 팔려 한 정거장을 지나쳤지만 그 기사의 마음에 감사하며 나도 마음의 다짐을 새롭게 했습니다.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성실한 사람이 많다는 생각에 흐뭇했습니다. 위기의식을 느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초인이 아니라 그런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우리에게 들리는 美談은 이야기가 아니라 생활의 양심을 단편적으로 증거 하는 피나는 노력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상가나 정신적 지도자들도 사실은 공공의 미담을 책임지는 공인인 까닭에 개인적인 변명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일시적 동감이나 동정으로 사건을 받아들이면 미담의 주인공을 쉽게 또 한번 죽이게 됩니다. 단편적 사실이나 인간적인 정에 그들을 받아들여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삶에서 등대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등대는 그 위치를 항해하는 배에게 알려서 각자의 항해를 단속하게 할뿐입니다. 선장이 그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개인적 신상에 관심을 갖고 등대의 불빛을 무시해 버린다면 그 항해의 끝은 뻔할 것입니다. 개인의 삶에도 적용되는 이 지도자들의 역할은 바로 그 등대로 남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지식인을 이끌어 가는 사상가들이 이런 역할을 못 할 때 스스로 물러나거나 외부적인 거세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나서 개인적인 접촉이나 인간적인 잔정을 보인다면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등대는 등대의 역할로 족하며 그 역할이 불가능 할 때는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습관적인 기대 속에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등대로 인해 좌초되는 배들이 속속 나타나게 될 뿐입니다."녀석은 지식인의 절대적 책임과 의무를 지적하며 조심스럽게 나타났다. 녀석의 '등대론'에 공감하여 사십의 남자를 주시하니 이 공간의 참 주인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우리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이름 모를 등대일지도 모른다. "최형 말대로 우리는 이시인과 결속될 수 없는 이방인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리가 공간으로 사라져 버리는 비애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야 합니다. 낭비를 벗삼아 언어의 유희를 즐길 수 없다는 말이지요. 니체는 '현명한 자 이는 자신을 낭비하지 않는 자'라고 했습니다. 철인의 눈에도 우리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안타까웠나 봅니다. 어떤 공간이 있는데 몇 사람이 이 공간을 점유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의도적이건 운명적이건 공간을 차지한 각자가 이 공간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공기를 나누는 그 현상에 동질감을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비정상입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일방적이었던 우리의 편협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우리는 부지중에 공간의 다른 주인 하나를 외면하는 우를 범하였고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체 끝 모르는 길을 달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대화의 동참자를 한 분 모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나의 제언에 모두의 시선은 사십의 남자에게 향하였다. 당연한 말로 생각되었는지 상훈이 내게 술잔을 권하며 어깨를 툭 친다."자식- 너는 역시 괜찮은 녀석이야. 잔 비우고 주인 아저씨께 한잔 올려라.아저씨! 죄송하지만 우리의 편협과 객관적 사고를 위해서도 함께 해주셔야겠습니다. 대단한 이야기 감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고민과 숨소리로 생각하시고 아저씨의 경륜을 guide line으로 잡아 주셨으면 합니다."여기에 한이석과 최형규도 합세하여 사십의 남자를 설득하려 한다."예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할 따름이지요.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떠들지 않았나 걱정됩니다."그에게 술잔을 권하면서 새로 등장한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으니 긴장이 쌓일 정도로 흥미가 있었다. 한이석이 술잔을 채운다."아! 술은 못하니까 이러시지 않아도 됩니다.""아니, 술 파시는 분이 술을 못하신 다니 될 말입니까? 그렇게 사양 마시고 한잔 받으십시오.""정말로 못합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면 장사는 누가 합니까?자선사업도 아니고 손님들에도 경우에 없는 실수를 해서는 안되니까요.""그래도 그렇지 저희들의 마음으로 받아 주실 수 없습니까? 그리고 이야기나 많이 해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아닙니다. 정말 못합니다. 더구나 말주변이 없어서 이야기와는 담을 쌓았지요."옥신각신 하면서 곤욕을 치르는 것은 한이석 보다는 사십의 남자였다. 이 주인공이야 장사의 특성상 비슷한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겠지만 한이석은 고집을 꺽지않고 그에게 반강제적인 권유를 하는 것이었다. 보다 못한 최형규가 한을 나무라며 그의 고집을 꺾었다. "야, 임마! 술 못 권해서 귀신된 조상 있냐? 이리 내! 내가 마실 테니까...네 참! 술도 못하는 놈이 권하는 것은 좋지만 예의는 지킬 줄 알아야지.이게 무슨 짓이야."최형규의 나무람에 한이석은 술잔을 최형규에게 돌렸다. 술잔을 받아든 최형규는 그 술잔을 급히 비운 다음 그에게 사의를 표하였다."아저씨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용서하시고 말씀이나 해주시지요."한이석은 담배를 꺼내어 문 다음 마치 원수를 잡으려는 심사로 연기를 깊게 빨아 들였다."손님!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의 기분도 이해 못하고 내 고집만 부렸군요. 아직도 권할 요양이면 한잔 주시구료. 오늘은 나도 한잔해야 할 것 같소."한이석은 예의 순수함을 되찾아 그에게 술을 권하였다. "죄송합니다. 예의에 벗어나는 무례를 용서..."천천히 술잔을 비우는 그의 눈가에는 역시 무엇인가 수수께끼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한이석의 얼굴이 금방 환하게 변하였다. 누명을 벗은 천진한 아이의 얼굴처럼. 우리는 숨을 죽이고 곧이어 흘러나올 이 주인공의 독백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완전한 합일을 위해 서로를 감시하였고 세대의 장벽을 허무는 보이지 않는 노력을 계속해서 시도하였다. 또한 우리의 합일에 치명적인 편견을 버려야했다. 한이석의 네개의 눈과 나머지 여섯의 시선이 최후의 빛을 비추려는 폭발처럼 강렬하게 새 주인공을 조명하고 있었다. 써야할 많은 것들이 뇌속의 창고에 가득한데 손이 자연스럽게 나가지 않아 시작을 못하는 문인처럼 이 주인공은 첫머리에 있을 action을 머뭇거리고 있는 듯하다. 마침내 술잔을 비운 소리의 첫 외출이 있었다."손님 고맙소이다. 술이 오늘따라 참 좋구만요."이 배우에게는 첫 인상이 중요하지 않은 듯 시원치 않은 서언으로 우리를 안심시킨다. 인사치례. 가장 상투적이라 도리어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는 상대방에게 허탈감을 주는 또 다른 삶의 pattern. 그러나 다음은 급격히 진전되는 인생사에 우리는 잠시 말을 잊는다."젊은이들! 지금 한창 땐데 연애는 열심히들 하고 있수? 모든 것이 때를 놓치면 후회스럽지만 연애는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삼아야 할거요." 그리 낭만적도 아닌 그로부터 나온 첫마디는 연애에 대한 그의 철학이었다."젊었을 때 계집질 안한 사람이 어디 있겠소만 젊은이들 대화를 듣고 있으니 하도 진지해서 사랑 이야기나 한번 더할까 하는데 어떨까?" 그는 우리의 동의를 얻기보다는 우리를 향한 일종의 선언으로 그의 말을 이어 가려하였다. 우리는 묵시의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난봉꾼일수록 자기가 사랑하는 진짜 여자를 만났을 때는 도리어 기를 못 핀다고 합디다. 한번 찍고 버릴 여자라면 아무 부담 없이 하루를 보내겠지만 평생 같이 해야할 여자라고 생각하면 함부로 대하지도 못하고 벌벌 떨며 소심해지기 일쑤라고 합디다. 하기야 사랑하는 여자와 이미 몸을 나누었다면 신혼 첫날에 얼마나 착잡하겠소! 생각들 해 보시구려. 첫날밤에 느껴야 할 그 신비감이나 설렘을 무엇으로 대치하며 이 여자와 평생을 같이 해야할 어떤 의무감도 사라진다고 하면 이것 보다 더 끔찍한 일이 어디 있겠소? "이런 말로 서두를 장식한 것이 본인에게도 느닷없는 일 인 듯 그는 설명을 곁들여 우리의 관심 밖에서 다시 대화의 안으로 들어오려고 노력을 한다. 시선의 집중을 필요로 한 그는 우리의 얼굴 하나 하나를 천천히 읽고 난 다음 드디어 아까 노친 말의 고삐를 다시 움켜쥐고 완급을 더하여 말을 몬다. "이런 장사를 하다보니 손님들 중에는 말상대를 필요로 하시는 분이 꽤 많더군요. 그래서 이것저것 듣고 귀동냥으로 담다보니 걸맞지 않은 소리까지 한 것 같군요. 연애다 뭐다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분의 이야기를 머리 없이 잘라 말한 실수 때문이니 내 소리는 빼고 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 같군요. 손님들 중에는 글쓰는 분도 있고 대학교수들도 가끔씩 찾아오곤 하니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도움이될 것 같군요. 전에 들렀던 손님 중 인상이 깊게 박힌 분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리다.다 듣고 나서 시간 낭비했다는 소리는 말고 한번 들어주었으면 합니다.""원- 별 말씀을 다하시는군요. 염려 놓으시고 말씀이나 계속해 주세요."우리 가운데 누군가 말을 이어받아 경우를 밝힌다."그러면 이제 그분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지요."서두의 망설임과 시행착오를 거친 그의 진지함으로 그는 우리를 작은 공간의 합일된 관객으로 모은다. 무대에는 일인 극의 주인공인 그와 소극장의 단 네명 뿐인 관객. 그는 드디어 말문을 열어 한 사람의 인생일지도 모르는 서사시를 읊기 시작한다. 그의 대사는 살아 움직이는 현장감과 생동으로 꿈틀거렸고 그의 표정은 역사의 현장을 지켰던 증인의 그것처럼 진지하고 엄숙하여 이야기를 듣고있는 우리의 호기심을 현실의 상황으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하였다.




둘.

"1950년 6.25가 일어나던 해에 그는 열 세 살이었습니다. 고향은 황해도 신천.3대 독자로 자란 자신의 신분을 훈장처럼 여겨 자랑보다는 행위의 한 부분으로 입력된 기억세포의 지시에 따르는 사람같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친구를 소개할 때는 친구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의 아픔을 털어놓는 것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하여튼 그는 친구의 형편을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그의 친구는 그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가난에 치어서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 합니다. 홀어머니를 모시는 어린 녀석이 일찍부터 철들어 가진 고생을 하면서도 생활의 노예가 되지 않았고, 겨우겨우 입에 풀칠을 하면서도 당당하게 자랐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과거의 상황은 반전하여 부농의 아들이었던 이 남자는 빨갱이들에게 부모를 저당 잡히고 자신의 한 몸만 겨우 챙겨 야밤도주 남으로 피난 왔다는 겁니다. 부농의 삼대독자로 자란 덕에 스스로의 성격을 지랄맞다는 표현으로 대신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주면 먹고 마시며 앞날을 걱정 할 필요 없던 열세살의 어린 아이였다는 겁니다. 그런 그가 동냥질과 좀도둑질로 피난 대열에 끼어 남쪽으로 밀려가면서 들려오는 소식은 고향을 완전히 버려야 할지도 모르는 암담한 것뿐이었습니다. 전쟁은 개구리 파리 잡아먹듯 위태로운 상태로 되어가니까 우선 남쪽으로 내려가서 죽지않고 목숨만 유지하면 나중은 어떻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밀려 밀려 부산까지 왔다는 겁니다. 동냥질도 하던 놈과는 비교가 안 되는 까닭에 죽을 고생하기를 몇 차례 한 다음의 그는 고아원으로 찾아가 스스로를 의탁하는 나름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열세살의 나이보다는 체격이 큰 때문인지 처음에 고아원에서는 그를 받아주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끈질김에 굴복한 원장이 결국 그를 받아 주었습니다. 몸이 유난히 크고 거친 성격의 그가 원내의 다른 아이들을 제치고 왕초로 군림하게 된 것은 그가 들어 온지 채 얼마도 안돼서 였습니다. 그는 그 당시를 떠올리는지 엄지 손가락을 내밀며 왕초가 되었다고 자랑스레 말하더군요. 이렇게 자신의 세계에서 기반을 잡아가던 무렵 원내의 최혜숙이라는 여자아이가 눈에 들더라는 겁니다. 차분하고 곱살 맞게 생긴 아이 최혜숙. 원내의 어느 계집아이 보다 참하고 아름다웠던 아이. 모든 아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놀고는 했지만 혜숙만은 언제나 혼자였다고 합니다. 고아원 생활에서 어린아이들은 이미 어린애가 아니고 어른애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과 장난을 하게되고 결국은 이런 이상한 장난으로 인해 도망치는 것이 상례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최혜숙에 대한 이 사람의 관심은 유별나서 장난은 커녕 보호자로 남았던 겁니다. 그러던 차에 고향에서 내려온 그의 친구 박기수가 그의 고아원으로 왔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왕초의 체면 때문에 새로 들어온 박기수를 아는 척도 안 했으나 원내 아이들의 지나친 텃세로 친구가 돌림을 당하는 것이 안되어서 그를 보살펴 주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를 통하여 듣게된 고향 소식은 실낱같은 그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고 고향을 기억에서 지우게끔 강요한 겁니다. 박기수의 홀어머니는 병으로 죽고 그의 부농 부모는 공개 처형되었다는 끔직한 것이었습니다. 동향의 친구가 천애고아로 한 고아원에서 만났으니 이 남자와 박기수는 서로 의지하며 형제처럼 지내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자란 환경과 성격은 서로 대조적이었으나 서로 이해하며 의지하는 동기가 되어주기로 한 겁니다. 샌님 박기수가 혜숙과 친해진 것은 아주 적은 성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심심해하는 아이에게 말이라도 걸어오면 얼마나 고마워하겠습니까? 바로 이런 방법으로 혜숙과 박기수가 가까워 진 겁니다. " 말은 이렇게 이어지기 시작하더니 급행열차를 탄 기분으로 속도를 더하여 달려간다. 이제는 변사도 필요 없고 오직 주인공 스스로의 행동에 생사가 달려 있는 흥행을 지켜볼 따름이다. 마치 거울 속의 또 다른 자신을 타이르듯 완전한 이입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는 어느새 남자의 거울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독백을 그 남자의 것으로 대신하는 감정이입이 이루어 진 상태였다. 이 주인공의 대사는 다른 한 인간의 생활을 묘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自我의 다른 표현이었다. "나는 기수와 혜숙이 밀착하는 것을 방관하는 입장이었답니다. 혜숙은 내 손이 닿을 수없는 거리에 있었고 그럴 바에는 다른 녀석에게 맡기는 것보다 이 샌님 녀석에게 부탁하는 것이 도리어 안심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아원의 담벽에 붙어서 겨울 햇볕을 나누어 쬐고 있던 이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내 쪽에서 보면 그 녀석에게 협조적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나는 왕초의 권력으로 이 둘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안전한 울타리를 쳐주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혜숙은 점점 계집의 틀이 잡혀갔고 기수 녀석은 글자 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유아기를 회상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기수 녀석에게 있어서 이 놀이는 다른 사람들의 호흡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놀이는 탯줄과 같아서 하늘의 재주를 양분으로 공급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배운 것 없는 녀석이 그런 글솜씨를 가졌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그 당시 밥만 먹으면 한스러울 정도로 길었던 자유시간에 기수는 이 놀이로 시간가는 줄 몰라했고 혜숙은 그의 열렬한 추종자로 남아 기수가 쓴 모든 것을 외우고 다녔습니다. 마치 어느 종교의 신앙 신조를 외우듯 말입니다. 초라한 교주와 광신도와의 관계는 이런 신앙적 끈으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이런 기수 녀석이 부러웠고 더 이상 방관할 정도의 상태가 아니였기에 처음에 계획했던 나의 생각에 약간의 수정이 필요했습니다. 초라한 외모에서 풍기는 그의 신비감은 나의 완력으로 누르기에도 벅찰 정도였습니다. 정신적 자유와 도도함으로 녀석은 고아원의 환경을 극복하고 낙을 찾았던 것입니다. 나는 녀석이 자유인으로 남아 나의 왕권에 도전하는 것이 불편했고 무엇보다 혜숙으로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녀석에게 올가미를 씌워 본떼를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혜숙과 항상 함께 있는 그것으로 그는 완전한 보호막 내에 있었습니다. 혜숙이 있을 때는 왠 일인지 기수에게 완력을 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혜숙의 강렬한 시선을 거르며 기수를 허물 수 없었던 겁니다. 나의 사랑에게 모욕이나 슬픔을 강요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결국 그 아픔을 상처로 간직할 사람은 바로 나밖에 없습니다. 나의 권력이나 권위는 그 녀석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그것을 아는 기수가 마치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야릇한 상태로 우리는 일년 이상을 버티어 왔습니다. 이 동안의 시간은 외부의 허세로 내부의 붕괴를 겨우 막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게 시작한 장난이 결국은 내 목에 손자국을 내며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끼리도 기수와 혜숙은 하나라는 말로 쑤근대었고 그들의 관계가 나의 초라함을 소리내어 알리는 것 같았습니다. 고아원에 들어온 지도 2년이상 되었고 따분한 원내 생활은 늘 같은 짓이니 할 일이라고는 비정상적인 것에 신경을 써서 이런 권태에서 탈출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어느 날 혜숙과 기수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기수! 심심하지 않아? 나는 요즈음 와서 조그마한 인형이 갖고 싶어.''다 큰아이가 인형은 무슨 인형이야...''아니 그런 인형 말고...' '아기 말이야?''......''이 처지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엄마의 사랑을 모두 주고싶어.''우리 같은 고아가 어떻게 그런 꿈을 꿀 수 있겠어?''머지않아 우리도 고아원을 나서게 될 거고 그러면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아니야? 그러면 우리도 아기를 키울 수 있겠지.''그래. 혜숙이는 좋은 엄마가 될 거야.''기수가 허락한 거야! 나중에 딴소리하면 안돼'.'알았어.'혜숙과 기수의 대화에 당황한 나는 여간 찜찜해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말장난의 질문과 확답이었지만 그들의 관계에서 이런 대화는 나를 불안과 분노로 떨게 하였습니다. 나의 이런 예측은 불행히도 얼마 가지 않아 현실로 나를 비웃고 말았던 것입니다. 휴전되는 해. 지금도 생생히 기억되는 그날. 53년 4월 23일 . 혜숙이 열 여섯 살 되는 것을 기념하여 기수와 혜숙은 아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칠흑의 어둠이 내린 뒷산에서 종교의 의식을 거친 다음 그들의 아기는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혜숙은 이날로 성년식을 가진 것이고 그보다 몇 달 전 기수는 열 여섯의 나이가 되었으니 그들 나름의 절차를 밟아 부모가 되고자 한 것입니다. 나로서는 그들의 절차가 즉흥적이나 어린것들의 치기로 볼 수 없는 아픔의 현장이었습니다. 보다 순수하고 거짓 없는 사랑의 참 결합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숨을 멈추어 목이 죄어 들어가는 고통으로 그들의 사랑을 훔쳐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권좌에 앉아서 가장 신뢰하였던 신하로부터의 모반. 나는 수치심에 몸을 떨며 보복의 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날 나는 기수라는 역모 자를 공개적으로 처형하였습니다. 전날 밤 아무도 몰래 아기를 만들었던 그 장소로 나의 심복들이 기수녀석을 끌고 올라갔습니다.나는 나의 분노와 치욕이 가실 때까지 녀석을 짓밟고 파괴하고자 하였습니다. 자신이 당한 모든 것을 그 녀석의 피부에 덕지덕지 붙여주고 싶은 심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처사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이미 승리자로 남아 나를 전보다 더한 패배감에 젖게 하였습니다. 녀석의 그 지독한 침묵과 잔인할 정도의 인내가 나를 도리어 섬뜩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 속에서 완전한 패자의 모습을 그의 눈동자에 각인하였고 그의 번쩍이는 눈빛은 나를 연민으로 받아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때리고 짓밟아도 그는 아무런 반항이 없었습니다. 녀석은 이미 위대한 승리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마침내 나는 나의 미친 짓거리를 멈추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혜숙의 눈물어린 만류보다는 녀석의 그 의연함에 일찌기 손을 들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다행이었습니다. 혜숙이라도 눈물을 보였기에 나는 패배를 인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동작이 멈추자 혜숙은 기수에게 달려갔고 그녀의 부축으로 일어선 녀석이 내게로 다가와서 얼굴을 찌푸리며 간신히 입을 열었습니다. '태식아 미안하다. 혜숙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놈은 바로 너야!'녀석은 이미 나의 심층 깊숙이 파고들어 모든 것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전에 내가 한번이라도 싫어하는 기색이나 반발을 보였다면 녀석은 순순히 물러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녀석은 나의 이 비겁을 용서할 수 없었고 나에게 쟁취의 용기를 보여줌으로써 나름의 의무를 다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혜숙과의 관계였고 나는 패배자로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나는 내가 쳐놓은 덫에 다리가 잘려 걸을 수조차 없는 사냥꾼 신세가 된 것입니다. 밤이 깊었지만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저지른 모든 짓이 그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먹으로 상대를 누르려 했던 단세포적 사고가 정신의 세계에서 가차없이 분쇄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는 다시 밖으로 뛰쳐나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달조차 힘이 다해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고 간간이 부는 봄바람조차 하나가 되어 소리내어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더이상 제정신으로 지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자신을 학대하거나 마땅한 징벌을 내리지 않으면 미쳐버릴것 같았습니다. 나의 어리석음에 독약을 투여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미련이 숨쉬지 못하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눈앞에 보이는 돌을 집어 나의 오른손을 가차없이 찍었습니다. 손이 있어서 패한 것이었고 주먹이라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입니다. 살점이 떨어지고 핏물이 분수처럼 흘러 내렸지만 나는 도리어 안락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머리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은 머리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은...'머릿속은 혼란하였지만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 반복된 message가 귓가에서 떠날 줄 모르며 맴돌고 있었습니다. 나는 밤이 새도록 울었습니다. 누구 앞에서도 울어 본적이 없었던 내가 누구에게라고도 할 수 없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눈물샘이 마를 정도로 울었습니다. 제멋대로 살아온 어린 녀석의 마음은 이제 주어 모으기에도 힘들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졌던 것입니다. 너무도 한심하게 살아왔던 태식이라는 놈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던 것입니다. 살아보겠다는 의욕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혜숙과 기수의 진정한 보호자로 남기를 맹세하였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숨은 그림자로 그들의 보호막을 쳐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를 일깨워 준 기수 녀석이 진심으로 사랑스러웠고 혜숙의 얼굴이 떠올라 절로 미소를 띠울수 있었습니다. 오른손의 아픔이 마치 산모의 진통처럼 경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밤새 의욕적으로 다시 태어난 태식을 아침의 태양이 거룩한 의식으로 맞아 주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태식의 각오를 그대로 받아 주었던 것입니다. 원내로 돌아온 태식을 보자 모두들 기겁을 하며 부산을 떨었습니다.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없는 손을 달고 나타난 왕초를 그들은 두려움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혜숙은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녀를 바라보고 나서 나는 의식을 잃었고 누군가의 등에 업혀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경황에도 이미 몰골이 사나운 기수가 나를 따랐고 원내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제왕은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흉찍했던 손은 대충 치료를 받고 나았습니다. 기수와는 전보다 가까와진 까닭에 무슨 이야기도 터놓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동도 자유롭고 손놀림도 불편함이 없게되자 기수의 속마음을 알아 볼겸 나는 녀석을 부추기기 시작했습니다. '기수야 이제 우리도 세상 공기를 마시며 사는 것이 어떨까?''그래. 나도 그러고 싶었어. 이곳에 오래 있으면 혜숙이 점점 곤란해 질꺼야.' 이런 짧은 대화 속에서도 우리는 전보다 더한 긴밀함을 느낄 수 있었고 어떤 끈으로 우리를 묶는 운명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혜숙은 기수와 함께 항상 내 곁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독점은 아닐지라도 무척이나 흥겨운 것입니다. 그들과 행복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소란스러웠던 사건이 있은지 두달만에 우리는 고아원을 탈출하여 바깥 세상의 일원이 되기로 하였습니다. 말이 도망이나 탈출이지 우리는 이미 열 여섯 이었고 그런 우리를 조건없이 키워줄 만큼 고아원의 온정은 무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탈출은 각본에 있는 것처럼 착오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도리어 이상할 정도로 말입니다. 구름에 가린 달이 하늘에서 웃고있는 그림 같은 밤 우리는 고아원을 나섰습니다. 이 별 탈없는 탈출이 현실의 차가운 손길을 대신해서 말하려는 듯 무슨 복선의 한 순간 같았습니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는 보이지 않지만 고난의 험로가 우리를 음흉하게 내려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고아원을 나온 때가 봄이었기 때문에 추위로 고생하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엄동 설한이라해도 우리의 탈출은 감행되었겠지만 얼마 안가서 추위에 떨고 배고픔에 시달려 이내 따뜻한 둥지로 되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머리가 다 자라고 이미 떠나온 고아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기수와 나는 혜숙을 위해 열심히 뛰었습니다. 양아치로 시작해도 떳떳하고 더군다나 자립을 한다는 것이 가슴 뿌듯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시작한 삶에 대해 겸손히 그리고 정직하게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피나는 노력과 억척으로 얼마의 돈을 모은 우리는 마침내 범일동 산마루에 판잣집 하나를 장만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대견하고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갓 아이의 틀을 벗어난 기수와 내가 우리만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어른스럽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행복은 이런 작은 만족일 것입니다. 우리는 초라한 생활 속에서도 찬란한 웃음을 나누고 살았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그 판잣집을 향해 올라갈 때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가볍고 행복에 젖어 있었습니다. 혜숙은 언제나 산길 입구까지 나와서 우리를 맞아 주었고 그녀의 화사한 미소로 우리의 피로는 씻은 듯 사라져 버리곤 했던 것입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정말 살맛이 났습니다. 비록 곁에서 나누어 갖는 입장이었지만 이런 행복은 어느 누가 빼앗아 가더라도 감소보다는 그 양이 도리어 불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이런 생활 가운데 휴전되던 해는 꿈같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자 전쟁의 검은 그림자를 벗어 던진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의 기대와 기회로 술렁거렸고 그런 상황 속에서 녀석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으로 재미를 보았던 부산도 수도가 서울로 옮기자 전 같지 않았고 우리의 벌이도 넉넉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생명은 환경을 가리지 않고 태어나는 까닭에 도리어 신비할지 모릅니다. 우리의 사정은 아랑곳 않고 혜숙이 공주를 낳은 것입니다. 다행히 그 구석에도 산파가 있어 혜숙의 분만은 수월한 편이었습니다. 새생명은 혜숙과 기수의 소유만은 아니었습니다.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지만 그 생명의 보호자는 내가 먼저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아기의 눈동자 야무진 입술. 갓난아기의 그것이었지만 생명의 고리를 타고 나온 까닭에 혜숙과 기수의 핏줄임이 분명하였습니다. 나는 그 생명을 위해 전보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기수에게는 새로운 호흡이 필요한 듯 한동안 멈추었던 길놀이를 다시 찾기 시작했습니다. 새생명이 녀석의 잠재의식 속에서 지탱할 수 없는 무게로 압박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공주의 분만이후 기수의 성격은 신경질적이 되었습니다. 작은 일에도 성을 내며 사사건건 혜숙을 향해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나에게도 시비를 걸어 왔지만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없이 감수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녀석의 번민은 분명 견디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나만해도 아직은 아이였지만 녀석은 처자가 딸린 어엿한 가장이었습니다. 생활은 기껏해야 입에 풀칠할 정도였지 올려다 볼 것조차 없었던 상황에서 발버둥이라도 쳐서 정신적으로 어떤 해방을 찾을 도리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런 환경이나 상황은 그를 질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아이였던 나와는 달리 기수는 이미 어른의 세계에서 현실을 바라보고 그것에 부딪기며 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녀석은 자주 눈물로 그의 심정을 보이곤 하였습니다. 삼 년의 고아원 생활에서도 눈물 한번 보인적없던 그에게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그것을 지켜보는 내 마음도 찧어 질듯 하였습니다. 그의 고뇌는 하루의 시작부터 긴 밤을 지속하며 흉터처럼 그의 몸을 떠나지 않고 그를 괴롭혔습니다. '떳떳한 남편 자랑스런 아버지'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집착은 환상으로 변하여 그의 잠재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작업장에서 그를 지켜보면 이미 예전의 기수는 아니었습니다. 말수가 줄어들고 정신이 산만하고 초점이 풀린 눈으로 우울한 하루를 허비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습니다. 이런 그와 함께 있다는 것이 섬뜩할 정도였습니다. 그에게서 예전의 찬란한 눈동자와 온유한 미소를 되찾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차라리 현실과 쉽게 타협하는 나에게 그의 짐을 맡긴다면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습니다. 육체의 고통이 정신의 모멸보다 견디기 쉬운 것 아닙니까? 그에게 있어서 혜숙과 공주가 짐이 될는지 모르나 내게는 도리어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는 것 같던 녀석의 행동 속에는 어떤 음모가 숨쉬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를 목격하면서 어둠의 신봉자로 그를 몰수는 없었습니다. 당장에는 파경처럼 보이는 현실의 일탈이 무엇보다 현명한 답을 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자폭보다는 또다른 탈출이 파멸을 피하는 그의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54년 7월 26일로 기억됩니다. 녀석은 두통의 편지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새로 태어나 떳떳한 인간으로 다시 찾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혜숙은 포교를 위해 떠나는 종교인의 message인 그 편지를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담담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 사랑하는 혜숙.당신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에 나는 이미 남편이었고 아버지가 되었소. 눈물로 시간을 대신하고 침묵으로 세상과 싸울 수는 없었던 까닭에 나는 가족과 행복을 나누기 전에 패배자로 어둠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오. 우리의 만남과 새 생명은 하늘의 축복으로 믿고 있소. 그러나 나의 무기력과 고뇌로 현실을 직시해 봐도 축복을 지켜나갈 자신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오. 한번의 삶을 의욕으로 펼쳐나가기도 전에 비참한 끝이 보이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소? 나는 그것이 견디기 힘들었소. 당신과 새 생명의 주위에서 행복을 찾기에는 불행이도 나의 이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오. 도피라는 말로 나를 대신해도 달리 변명하지 않겠소. 무책임한 탈출이라고 해도 달리 할말이 없소. 이름도 없는 아이를 남기고 허상의 세계로 달려가는 이 순간을 자유의 탈출로 생각하지는 마오. 당신과 새생명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죽음보다는 혼미한 미래를 바라보며 하는 의미있는 몸부림이라 믿어 주길 바라오. 범일동의 솜사탕 같은 시간들을 잊지 못할거요. 내게 사랑을 가르쳐준 당신. 생명의 신비를 더해준 우리아기.당신과 아기를 위해서도 더 열심히 살리다. 그리하여 사람다운 자가되어 당신과 우리의 공주님 앞에 떳떳이 나타나리다. 그때까지는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 매고 사랑으로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봅시다. 미안하오. 당신과 아이를 사랑하오. 당신의 기수.'
또 다른 편지를 손에쥔 나는 혜숙의 표정을 확인한 다음 안심하고 읽어 내려갔다. ' 나의 하나 밖에 없는 친구 태식.진실로 너를 사랑했다. 너는 나의 하나 밖에 없는 친구였다. 내가 혜숙을 사랑할 수있었던 것은 모두 너의 숨은 정으로 시작되었다. 네가 비겁했다기 보다 나의 발빠른 움직임이 혜숙을 차지한 결과였다는 것을 잊지말거라. 적어도 사랑은 양보로 설득하거나 동정으로 거저 얻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거라. 나의 탈출도 너의 존재로 가능한 것이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너의 부재를 상상해 본적이 없으니 나보다 충실한 보호자로 혜숙과 아기의 곁에서 나를 대신해 주기를 바란다. 너는 내가 없는 동안에 혜숙의 정신적 남편으로 그리고 우리 이름 없는 공주님의 인자한 아버지가 되어야한다. 너의 삶이 나의 일을 뒤처리하는 것이라 생각 말고 진정으로 우리 가정의 보호자로 남아 주었으면 한다. 작정을 하고 세상으로 나가긴 하지만 얼마 동안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까닭에 몇 년을 부탁한다는 소리도 못하겠다. 나의 잠적이 보람되기 위해서는 너의 희생으로 가능함을 안다. 구차하게 변명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일이 순리대로 되어가길 바랄 뿐이고 사람답게 되어 다시 복귀할 그때를 기다린다. 미움은 사랑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얼굴임을 안다. 혜숙의 사랑을 확신하고 있지만 나의 부재로 인한 어떤 일도 내가 감수하겠다. 나는 너를 믿는다. 너의 결정은 앞으로 나의 뜻이라는 것을 믿고 네 의지대로 하거라. 용기없는 부탁이라 더이상 할말은 없다. 자신을 죽이면서 까지 곁에 있지는 말거라. 그것을 강요하면서 현실을 도피하는 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너에게 실컷 두들겨 맞고싶다. 그후에 떠나는 것이 도리어 홀가분할 것 같다. 그러나 너의 만류를 뿌리치기가 불가능함을 알기에 몰래 도망치듯 떠나게 된다. 용서를 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다시 만날 그때까지 열심히 살아보자. 그후에 우리 다시 만나 얼싸안고 멋지게 웃어보자. 살아왔던 기억의 낱날을 다시 헤아리며... 짧은 기록.
연속은 끊어짐과 이어짐으로 의미를 찾아 돌아가는 하루와 손을 잡는다.
쉽게 살 수 없는 한번의 삶이기에 높은 산에 사랑을 달고 생명의 열매를 기다린다. 오늘 나의 시간이 더 이상의 기억을 더하지 못하여도 내일의 꿈을 가슴에 품으며 전설의 세계로 떠난다.
그대 나의 벗 죽음의 끝이라 하여 나를 잊지마오. 돌아와 그대 발에 입마출 그날까지... 54726 기수.'
기수 녀석은 이렇게 해서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잠을 청하듯 잠복의 세계로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으로 현실의 괴로움을 극복한 줄 알았지만 깨어나 보니 그 사랑은 한 순간의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식에 굶주린 한 인간이 현실과의 전투를 벌이지도 않고 도피했던 이야기라고 해 둘까요? 최근에 우연히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마지막인 이별을 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태식이라는 사람의 입을 빌어 옮겨놓은 이 새로운 주인공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압도하기에 충분하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책임 없는 십대의 사랑놀이라고 치부하면 그만 이었지만 일상의 다반사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극적인 요소가 많았다. 이 주인공의 말 대로라면 기수라는 사람이 우리의 대화를 이곳까지 끌고 온 이기도 시인의 양심을 대신할 인물로 생각해도 좋을 듯 하였다. 그의 사고 밑바탕에 깔려있던 지식에 대한 욕망과 배움에 대한 갈증이 왠지 그의 탈출을 정당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나의 무슨 궤변으로도 그의 삶을 대신하지 못하지만 그의 도피가 그 한사람만의 단발적 행위는 아닐 것 같았다. 우리 중 누가 그를 자신 있게 비난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단지 이야기의 한 등장인물인 까닭에 그를 쉽게 매도한다면 그 책임이 우리에게는 없단 말인가? '정신의 자유' '사람다운 삶' 아직도 귓가에 머무는 이상한 소리가 있다. 이 주인공은 우리의 형편을 배려해 주는 인정미까지 있었다. 모두에게 정리의 시간을 나누어주듯 그는 침묵을 통해 자유로운 사고를 인정하고 있었다. 너무 무관심했던 일이 있다. 인간 관계에서 빠질 수 없는 정에 관한 일.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한 여인을 사랑해 보고싶다는 생각. 어처구니없게도 이 시간에 사고의 접힌 공간을 파고 들어오는 것은 결국 사랑에 대한 사고의 조각이었다. 현이 생각이 무섭게 일어나고 있다. 의식적으로 피하려 했던 이 생각으로 나는 지난 몇달동안 마음 앓이를 해왔다. 잠잠하게 어느 한 구석에 쳐 박혀서 웬만한 자극에도 반응 않던 누구를 향한 그리움이 지금 주체 못할 정도로 나를 흔들어 놓는다. 어린 소녀로 생각했던 현이가 성숙한 여인으로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숱한 번뇌로 밤을 지새우곤 하였다. 사 년의 이별 기간 동안 의식적으로 지우려 했던 모든 기억들. 도리어 그것 때문에 미안해하고 그녀를 더욱 그리워했던 그 생각의 반항. 무관심으로 잊은 줄 알았던 그 모든 기억들이 불현듯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모든 시간과 기회는 가버렸기에 내 마음은 못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갑자기 찾아온 고립감과 외로움의 낯을 올려다본다. 쉽게 말해왔던 '마음은 항상 함께 있다.'는 소리의 가면이 조소를 보내는 듯하다. 현이 생각이 도리어 옳았던 것. '이렇게 하다가 결국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녀의 당돌한 질문에 나는 언제나 우유부단함으로 머뭇거리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궁색한 답변으로 그녀를 다시 한번 실망시켰던 것이다. 비겁한 남자의 사내답지 못한 변명과 무책임. 현이를 생각하면 나의 무기력과 애처로운 몰골이 spot light 앞에서 확연하게 들어난다. 불행하게도 현이가 떠난 다음에야 비로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슴속에 키우고 만 것이다. 한 계단 위에 있기를 좋아했던 나를 현이는 언제나 말없이 따랐고 나의 바보 같은 행동에도 웃음으로 대신해 주었던 그녀.멋있게 해어지자는 나의 제안에도 현이는 순종으로 받아 주었다. 그녀의 큰 눈망울에 가득 담겨있던 눈물. 갑자기 타오르기 시작한 이별 순간의 연민. 나의 어리석은 행동과 보잘것없는 자존심이 참된 사랑을 농락하고 만 것이다. 지금 현이의 생각으로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그리고 비겁했던 지난날의 행동이 다시 나의 오류를 난도질하고 있다. 현이는 진정 나의 사랑이었다. 사랑했던 현이를 지금 보고 싶다. 환상이라 할지라도 그녀의 얼굴을 만져보고 싶다. 우리의 공간은 이 자유로운 사고의 여유로 어지간히 정돈된 기분이었다. 이 주인공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 것이 고마운 듯 따뜻한 국물을 우리 앞에 놓으며 인사를 한다."쓸데없는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어서 고맙소. 자, 뜨끈한 국물로 속이라도 풀어가며 한잔하시구려. 인생도 따뜻한 국물 같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의 아쉬운 표정 뒤에는 끝내지 못한 이야기의 후편이 있는 듯 하였다. 그는 누구의 동의도 필요 없다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가슴에 뭍어두었던 이야기가 몇 달 전에 되살아 난 것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그의 끝말이 일종의 물음표로 우리에게 반응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심중을 간파하고 빠른 질문을 던졌다. "아저씨! 그 우연이라는 말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까?"주인은 쉽게 말을 잇지 않는다. 이때 권상훈이 술잔을 권하자 잔을 비우고 나서도 한 동안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만에 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태식이라는 사람은 과거를 모두 묻어버릴 심사로 그후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달전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 이야기가 되살아나게 되었다는 말로 나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그 우연의 내막을 밝혀 달라고 했지요. 태식이라는 사람은 뛰어난 낚시꾼처럼 미끼를 던지며 나의 궁금증을 자극하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오직 서두에 불과하다는 듯 폭풍의 눈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화약고를 향해 놓여진 도화선에 불을 당기듯 말입니다.
서울의 지게꾼 생활을 이십년 가까이 하게되면 내집안 살림을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온갖 노력을 해도 기수녀석은 찾을 길이 없었지요. 이미 잊혀졌거나 녀석의 말 대로라면 아직 사람답게 되지 못해서 떳떳이 나서지 못했는지 모르지요. 좌우간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추위는 찰거머리 같은 존재랍니다. 찬란한 태양, 순수의 눈, 우수의 낙엽들은 부자들의 허영이지요. 배에 기름가 잔뜩 끼어 짖어대는 소리밖에 안되니까요. 녀석을 이십 년이 훨씬 지난 뒤에 우연히 마주친 것도 바로 이 지랄 맞은 추위와 더불어 낙엽이 쌓이기 시작하던 때의 일입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 지던 차에 대낮부터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서울역으로 나섰습니다. 그날 따라 운수가 왜그리 좋은지 밤늦게가 되어서야 빈속을 채울 정도로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나니 밥맛도 좋고 소주로 반주를 해서 저녁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왠지 아쉬워서 다시 역앞으로 갔습니다. 담배 한대 태우고 나자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짐을 단단히 죄어 메고 양동쪽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술이 몸속으로 들어가니 훨씬 힘도 나고 기분도 좋았지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신호등이나 육교를 가리지 않고 그저 달리기만 하는 버릇이 있지요. 생각해 보세요. 지게를 지고 육교를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하루일 은 언제 끝마치게 되겠는가 말입니다. 술기운에 다리는 신나게 움직이지만 눈앞이 감감한 것까지 어떻게 할 도리는 없더군요. 그래서 무작정 앞이다 생각하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 이었습니다. 차량 행렬과 반대쪽으로 뛰다가 달려오던 차에 받치게 된 겁니다. 나는 공중으로 멋지게 떴고 뒤따라오던 집주인도 제정신을 못 차린 체 한동안 동상처럼 그 자리에 서있기만 하였습니다. 그 상태로 오랫동안 머물 수 없었던 짐주인은 마침내 제정신을 차린 후 재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천원짜리 몇 장을 내 주머니에 찔러주고는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어쨌든 일종의 불로소득이었기에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정작 놀란 쪽은 차를 몰던 운전기사 이었을 겁니다. 거친 말 한마디도 뱉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자기사였다는 겁니다. 창백한 얼굴에 떨리는 음성으로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있던 그 기사가 도리어 안타까울 지경이었습니다. 급기야는 차안에 있던 승객이 나와서 그녀를 대신해 일처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우선 길 위에 내동댕이쳐진 나를 들어 차에 실은 다음 가까운 병원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어느 개인병원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나는 일종의 풍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안락한 침대. 깨끗한 침대보. 쾌적한 실내공간. 소독약의 메키한 냄새만 없었다면 병실이라는 곳도 준 낙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겁니다. 이상할 만큼 야릇한 풍족감이었습니다. 거기에 택시를 타고있던 손님이 병간호에 말동무까지 되어주니 더할 나위 없는 휴식이었습니다. 그 손님이 참으로 고마왔습니다. 사고의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인연으로 나를 이처럼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그 손님이 예사 사람 같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차를 타고 가버리면 그만인 것을 궂은 일을 마다 않고 구태여 이곳까지 동행해 주었으니 말입니다. 그는 보호자도 없는 나를 홀로 남기고 떠나는 것에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다음날 다시 찾겠다는 약조를 남기고 병실을 떠났습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부산을 떨고 걱정할 일들도 우리같이 몸을 밑천으로 해서 사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곤 한답니다. 잡초의 생존력이 온실에서 자란 화초의 그것보다 당연히 강하듯 사람에게 있어서도 다를 바 없다는 겁니다. 탈골이나 기껏해야 어느 구석의 뼈 몇 개가 부러진 정도지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겁니다. 모처 럼만에 지친 육신에게 휴식이라는 선물을 할 수 있게되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나는 병실의 침대 위에 누워 갖가지 공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은 삶의 풍족감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비록 나의 부로 이룩한 것은 아니지만 물질적 풍요로움이 꽤나 그럴듯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풍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지요. 공상의 날개로 날다보니 날새는 줄도 모르고 새벽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새벽이 되니 온몸이 찌푸둥해서 견딜 수 없더군요. 긴장이 풀리고 약기 운이 떨어진 때문인지 몸 구석구석을 바늘로 찌르는 것같은 아픔 때문에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아픔과 씨름을 하다가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비몽사몽. 달콤한 수면. 안락한 침대. 알 수 없는 기나긴 꿈의 이어짐. 혼미한 잠에 취해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갈증으로 견디다 못해 잠에서 깨어나니 어제 한참동안 병실을 지켜주었던 그분이 와있었습니다. 그분은 물 잔을 들고 나에게 다가와 그것을 건네어 주었습니다. 나는 그 물 잔을 받아들자 사막을 횡단해온 위대한 탐험가의 갈증으로 단숨에 잔을 비웠습니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냉수의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쾌감이었습니다. 그는 나의 만족한 표정을 확인하고 난 다음 빈 잔을 받아 조그만 탁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게로 다가왔습니다.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병실에는 그와 나 둘뿐이었고 우리 사이에는 표현 못할 야릇한 감정이 서로를 감쌌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무겁고 굳게 닫힌 입을 열어 나에 대한 확인의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부산 천사원 ...' 그는 말을 맺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임태식! 자네 태식이 맞지? 그렇지?'그는 대답할 겨를을 주지 않고 나의 이름을 몇 번인가 반복해서 불렀습니다.'예! 그렇습니다만 선생님은...'나는 엉겹결에 대답을 하였지만 무슨 영문인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다만 놀란 눈으로 그를 지켜보며 그의 설명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가 언제, 어떻게 나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또한 누구기에 나를 이처럼 정색을 하며 반기는지 나로서는 추측할 수없는 수수께끼뿐이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입을 통해 터져나올 엄청난 비밀을 하나씩 헤아리며 과거와 이어주면 그만입니다. 그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듯 그 동안의 경위를 설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의 신분을 알게된 것은 어제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의 보호자로 자신이 서명을 한 때문이며 그 기재사항을 읽어내려 가면서 내 본적과 이름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하는 그의 고백이 나를 아연하게 하였습니다. ' 나 기술세. 박기수!'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의 심장이 멈추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잃었던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그 이름을 이십 여년만에 본인의 입을 통해 듣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꿈엔들 생각해 보았겠습니까? 감정이 무디어 졌다고 할까요? 불감증에 걸렸다고 할까요? 그는 피고석에 앉아 자신의 삶을 맡긴 후 판사의 판정을 기다리는 피의 범처럼 말을 끊어 버렸습니다. 기가 막힌 건 제 쪽이었습니다. 어제 마셨던 소주의 알콜 입자들이 방울방울 살아나 다시 한번 나를 술독에 빠뜨리고 있었습니다. 박기수!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그러나 귓전에 남아있는 박기수라는 이름 석자는 아주 명료하게 고막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수라는 이름과 관련된 모든 기억들이 집달리나 되는 것처럼 차압딱지를 붙이려고 덤벼들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상대를 못 찾아 골방에 처박아 두었던 기억들이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고 앞다투어 뛰어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구멍을 통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기억의 물결. 순서가 뒤바뀐 기억들이 한 목소리로 알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최혜숙. 소리는 있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 그녀의 웃음이 구름 속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아득하기만 합니다. 박예슬. 생부도 모르는 이름 석자를 손에 쥐고 돌아간 공주님. 임태식. 과연 나는 누구인가? 든든한 보호자? 믿음직한 남자? 어림없는 소리. '채무자는 박기수가 아닌 임태식 바로 너야!' 이 무서운 선고가 내려진 후에 나는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채권자를 찾아 이십 여년동안 진 삶의 모든 빚을 청산하려 했다는 구차한 변명이라도 말입니다. 분명히 박기수는 내 인생의 채권자 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모든 것을 아무 조건 없이 나에게 이십여년 동안 무이자로 대출해 주었으니까요. 마침내 그 인생의 빚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보잘것없는 무일푼의 한량이라 할지라도 이 무거운 짐은 벗어 던져야 했습니다. 삶의 무게 덕에 지게 짐도 가벼웠는지 모르지만 주인을 만난 이상 인생의 지게를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잡념의 실 끝이 왠만 해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혼돈의 연속... 생각의 침묵이 사고의 혼돈을 정리하고 나서야 내가 마주한 사람이 박기수며 나의 혼란이 기수의 귀에서 정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쾌적하였던 실내 공기가 답답하기만 하였고 갑자기 밀려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현기증이 일었습니다. 깊은 숨을 몰아쉬고 생각을 정리하고. 나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가는 햇살 한 가닥이 curtain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음의 평정이라고 할까요? 배에 기름낀 소리하는 것이 죄송하지만 이것 보다 걸맞은 표현을 찾을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때 녀석이 '그 동안..' 아니면 '어떻게..'라는 식으로 말을 다시 걸어 왔더라면 나는 쉽게 입을 열 수 있었을 겁니다. 아니, 모든 것이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지만 어차피 칼자루를 쥔 사람은 내쪽이었으니 백정처럼 칼을 휘둘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돼지는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나는 그의 목에 칼등을 대고 섬뜩한 살기를 강요하며 백정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더이상 그를 위해 체면이나 동정의 산책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좋은 말로 값싼 연민을 보일 때는 이미 지났다는 말입니다. '자네는 혜숙이를 두 번이나 죽였어! 그보다 더한 완전함이 없을 정도로 말이야.'녀석은 고개를 들어 백정을 올려 보았습니다. 도축되는 녀석의 모습은 죽음을 앞둔 짐승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짐승의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은 최후의 순간을 순리로 받아들이는 순종이 있습니다. 나는 분명히 이런 모습을 녀석에게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최후의 순간은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더군요. 그는 고막이 감당 못할 침묵으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소리내어 우는 것보다 몇 배나 더한 절규였습니다. 가슴을 찢는 절규로 소리의 존재를 압도하는 이것이 이십여년 전에 뱉은 사람답게 되어 나타나겠다는 그 말의 진상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백정이기를 작정한 이상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되었습니다. 녀석은 들어야했고 나는 그에게 마지막 한 방울까지 토해 내야만 했습니다. ' 나는 더 이상 더부살이의 인생으로 나의 삶을 마치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터뜨려야 했던 알 수 없는 불만. 자신에 대한 반감. 이런 종류의 압박으로부터 탈출해 보려 했다는 편이 옳을는지 모른다. 떨쳐야 할 환상이었다면 선을 긋고 나의 길로 갔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상상에 불과했네. 이를테면 환상과 결속한 또 다른 모습의 괴물이 나의 어떤 시도도 무기력하게 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쉽게 포기했는지도 모르지. 이거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만 지껄이고 있군 그래. 그렇지! 처음부터 제대로 시작해야 끝이 바로 보이겠지? 사람의 운명이란 이미 정해진 틀에서 움직이는 것 같더군. 순리대로 살라던 어른들의 말씀이 괜한 소리는 아닐 것 같으니 말일세. 사실 지까짓 인간들이 억지로 그 틀을 변형시키려 해도 별수 없다는 거야. 쉽게 말해서 자네가 어엿한 신사가 된 것이나 임태식이 지게꾼으로 밥벌이를 하는 것이 모두 하늘이 정해놓은 이치였다는 말일세.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군말할 필요도 없고... 박기수의 공주님은 세상을 알기도 전에 생명의 신비를 상실한 분이 되고 말았네. 공주님은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기 전에 싫다고 던져버린 분일세. 고고하다 할까? 어지러운 세상의 잡것보다는 고향의 흙을 사랑하여 흙의 딸로 남기를 원하셨지.
자네가 떠난 지 삼 개월쯤 후부터 헤숙이 거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네. 자유롭다기 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공주님을 키우려는 듯 억척을 부리기 시작한 거지. 산후조리와 생활정리라는 두 가지 숙제로 인해 혜숙은 변하기로 작정했나 보더군. 옆에서 구경꾼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혜숙의 그 강인한 면을 처음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네. 어머니가 되는 순간 혜숙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인간으로 태어난 셈이지. 어차피 보호자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한 나는 공주님을 위해 전보다 열심히 뛰었고 수입의 전부를 혜숙에게 전해주었지. 그런데 부담을 느끼는지 그 절반은 다시 돌려주곤 했지. 도움을 주는 것도 고마운 일인데 내 수입 전부를 거저 받는다는 것은 부당하다며 거절을 했지. 내가 고집을 부려 돈을 안 받겠다고 하면 도리어 화를 내서 나를 곤욕스럽게 만들기도 했다네. 어떻게 생각하면 섭섭하기도 하지만 혜숙의 모습을 통해서 사는 게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하여튼 자립을 목격하는 것같이 흐뭇했다네. 공주님의 이름은 예슬이라고 했네. 예쁘고 슬기롭게 자라라고 혜숙이 지어준 이름이었지. 예슬이는 이름 그대로 참 예뻤지. 날이 지날수록 자네를 꼭 빼 닮아서 나는 자네를 보는 것 같았다네. 혜숙이도 예슬이를 통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자네의 약속을 기다린 것 같아. 그래서 그런지 예슬이와 좀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았지. 환상에 사로잡힌 훨씬 뒤에 가서도 말이야...자갈치 시장에서 꼬마네 하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혜숙은 삶에 억척이었지. 고생할 때는 사람들 사이에서 따뜻한 정이 솟아나게 마련이지. 서로들 혜숙의 모녀를 잘 거들어 주었거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게딱지같은 집을 향할 때도 피곤한 줄 모르고 행복했던 이유를 찾으라면 이런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살 수 있었던 때문이라 답하겠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오랫동안 사귀어 온 사람처럼 '색시 참 용해!'라고 서슴없이 혜숙에게 말을 해주었지. 그런 말을 주위에서 더해줄 때마다 혜숙에게는 힘이 되었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꺼야.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자신감이 한 단씩 쌓여 갔겠지. 그러나 운명은 괴팍한 놈이라서 이런 행복감으로 쌓아왔던 모든 노력을 허사로 하기가 일쑤지. 잘 만들어 놓은 종이 비행기를 이유 없이 구겨버리는 심술꾼이 바로 이 운명이란 말일세. 그래서 불행은 항상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훼방거리를 찾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르지. 모든 기쁨의 얼굴 뒤에는 이름을 달리한 슬픔이 그 표정을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 불행의 늪에 빠지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하나의 황홀일 수 있다는 걸세. 하루살이에게는 현란한 불이 황홀경이지만 그것이 동시에 자신의 생명을 앗아가는 사형 틀이라는 걸세. 세상살이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 알면서도 어쩔 수 없고 조마조마 하면서도 그 불행의 쾌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해. 예슬이는 아주 귀엽게 잘 자라고 있었지. 혜숙의 안식처요, 자네의 초상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말이야. 초가집에 불이 나면 하나도 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겠지? 그런데 기와집에 불이 나면 불이라는 놈도 세도에 기가 질려 힘을 못쓴다고 하더군. 하기야 이런게 세상이겠거니 하지만 당하는 건 항상 우리같이 없는 놈들이니 답답하다는 말일세. 56년 초라고 기억되는 군.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워서 독감 한번 안 걸린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 예슬이도 사람 구실을 하려는지 그놈의 독감을 앓게 되었다네. 지독한 독감에다가 견디기 힘든 추위로 혜숙이도 며칠동안 집에 있을 수밖에 없었지. 그렇게 며칠을 빈둥거리니까 혜숙이도 견디기 힘들었던지 예슬이를 둘러메고 장사를 나가겠다고 억척을 부리더군. 독감 앓는 아이를 죽일 작정이냐고 되물었더니 그러면 어떻게 하냐는 거야. 답답하더군. 내 마누라 같으면 윽박지르고 말 것을 혜숙에게는 그 짓도 못하겠더군. 고집 부리지 말고 정녕 일 나가려면 아이를 두고 나가라 했지. 그랬더니 이번에는 꿈자리가 안 좋다는 거야. 꿈가지고 아이를 고생시킬 생각이냐 했더니 꿈 이야기를 털어놓더군. 한번 들어보게나.' 예슬이가 자라서 시집가는 꿈을 꾸었어요. 연지곤지로 아름다운 화장을 했고 화려한 한복으로 선녀 같은 신부가 되어 있었어요. 다소곳한 표정도 잘 어울렸어요. 내가 봐도 손색없는 우리 딸이 그저 자랑스러웠어요. 기쁜 마음으로 신랑 쪽을 둘러보았어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신랑이 보이질 않는 거예요. 영문을 몰라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더니 예슬이는 왕비로 궁중에 들어간 다는군요. 경사도 이런 경사는 없다고 서로 얼싸 안으며 춤추는 모습이 보였어요. 사람들은 마을의 축복이라고 자랑하며 대궐에서 보낸 가마로 몰려들었지요. 마을 한 복판에 두개의 엇비슷한 가마가 놓여 있었지요. 하나는 평범한 꽃가마였고 또 다른 하나는 아주 화려한 꽃상여 였어요. 그런데 어느 누구 하나도 상여가 왠 말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결혼 잔치에 상여라니 상상이나 할 일이에요?대궐에서 나온 일행들이 신부를 데리고 갈 시간이 되어 예슬이가 가마에 오를 때였어요. 당연히 꽃가마에 올라야 할 신부가 화려한 꽃상여에 오르고 있었어요. 아무도 신부를 막는 사람이 없었고 상여에 오르는 예슬이도 소리 없이 웃고만 있었어요. 신부가 상여에 오르자 일행은 신부를 싣고 대궐로 향하기 시작했지요. 떠나면서 예슬이는 나를 향해 '어머니 안녕' 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거예요.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앞을 가로막아 더 이상 행렬을 따르지는 못했지만 예슬이의 '어머니 안녕' 이라는 소리는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어요.''듣고 보니 예사롭지는 않지만 꿈은 현실과 반대라고 하잖아. 더군다나 지금은 아이가 더 걱정스러우니 혜숙의 고집으로 아이를 고생시키지는 말아.'나는 혜숙의 걱정을 꿈이라고 잘라 말했지. 그래야만 예슬이가 집에서 안정을 취할 수 있거든. 옆집 노인에게 부탁하면 아이 하나는 쉽게 거들어 주시니까 염려 놓으라며 혜숙을 달래 주었지. 최초의 신념이 확신으로 되어서 웬만한 저항이 없으면 그것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걸까? 혜숙은 간밤의 꿈이 일종의 계시라 느껴졌는지 아이를 두고 나가지 않았어. 나도 더 이상 막지는 않았네.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라는 걸 잘 알고 있거든. 산 아래로 내려 갈 때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은 차라리 면도날이었지. 등에 업힌 예슬이는 끝없이 기침을 뱉어내고 덮어씌운 이불이 답답하던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지만 혜숙에게는 용납이 안 되는 행동이었어. 모녀간의 그런 행동은 차라리 전쟁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정도였지. 나는 그들의 뒤를 따르며 안타까움만 더하고 있었다네.
무엇에 쫓기듯 산 아래까지 내려온 혜숙이 뒤따르던 태식에게 말을 던진다. 한풀 꺾긴 어조로 보아 전과는 다른 표정이었다. '태식씨 말이 맞을 것 같아요. 꿈은 현실과 반대라는 것 말이에요.''내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니 맞을 꺼야. 설사 꿈이 현실로 나타나도 그것이 운명이라면 별 도리가 없겠지.' '왜요?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는 말인가요?''사람의 힘으로 순간의 재앙을 모면한다 해도 결국에 가서는 사람일을 주관하는 하늘의 뜻대로 되는 것이 운명이 아닐까? 사람답게 사는 도리란 이 운명을 거역하지 않고 솔직히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내 처지를 봐. 만석꾼의 아들이 이 모양 이 꼴로 지낼 줄 누가 짐작이라도 했겠어?''그럴까요? 그러면 기수씨도 운명대로 살고 있는 걸까요?''모르지. 녀석의 탈출이 그의 운명일지도 모를 일이거든.' '......'한길로 나온 그들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혜숙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갔다. 옥신각신하며 다투었던 조금 전까지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예슬이의 독감이 우선이라는 현실의 중대사를 찾아낸 것이다. 찬바람을 가르며 거리를 배회한 일행은 마침내 목표를 찾은 듯 소아과 안으로 들어갔다. 의사와 간호원의 보살핌으로 예슬이는 금방 평온을 찾아 잠이 들었고 전문가의 말 한마디로 혜숙의 갈등도 이성을 찾아 타협을 보고자 하였다. '찬바람을 맞으면 폐렴으로 번질 지도 모르고 그러면 손쓰기도 쉽지 않습니다. 독감에는 절대 안정보다 좋은 약이 없어요. 아이도 바깥 세상보다 집안이 편할 겁니다.'그제야 아기를 키우는 것이 엄마의 고집만이 아님을 인식한 듯 혜숙이 부끄러워하며 의사에게 말을 건다. '별 탈은 없겠지요? 우리 아기는 선녀 같은 아이라서 잘 키워야 하거든요.''급한 대로 손을 썼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안정입니다. 아이에게 찬바람은 독약보다 나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될 수 있으면 바깥 공기는 피하세요.''예. 선생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아이를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도리어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손에서 안 떼려고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소유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랑할수록 아이를 냉정하게 키워야 하며 아이도 생명인 이상 엄마와 다른 몸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혜숙을 대신해 태식이 고맙다는 말과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왔다. 그들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그들의 발길은 게딱지같은 보금자리로 향하고 있었다. 산을 내려올 때보다 예리한 바람이 태식과 혜숙의 얼굴을 할키고 도망간다.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산을 오르는 그들의 얼굴은 행복으로 빛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혜숙은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깔고 아기를 아랫목 깊숙이 쑤셔놓는다. 소꼽장난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을 혜숙을 보더라도 여자라는 동물은 신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가야 엄마밖에 나가 일보고 올 동안 착하게 잠자고 있어라. 엄마도 곁에 있으면 좋겠지만 예슬이가 아파하는 걸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싫어. 아가가 아파하는걸 보면 눈물이 나와 못 참게 되. 전에 아빠가 떠날 때 엄마가 약속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절대로 눈물 안 흘리기로 한 거야. 우리 아가가 아프면 그 약속을 깨야하고 약속 안 지키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 아니니? 그러니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밖에 나가 일보고 올께. 단 꿈 꾸고 잘 자거라.'혜숙은 이미 깊은 잠에 떨어져 있는 예슬이를 향해 속삭이듯 말을 한다. 다정한 친구 예슬이 곁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했다. 딸을 위해 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애처롭게 딸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이 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선언을 할 때는 누구나 그러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어조로 혜숙이 중얼거린다. '역시 나가는 것이 좋겠지요?''아이를 위해서는 함께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괴로워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도 고역이에요.''정 그렇다면 혜숙이 맘대로..'태식은 뒷말을 흐리며 혜숙의 뜻을 따랐다. 잠든 예슬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혜숙은 아쉬움을 남긴 채 방문을 나선다. 혜숙의 모습은 마치 달콤한 유혹을 필사적으로 뿌리치는 사재의 그것과 같았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딸을 사랑하는 이 기쁨이 딸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눌러야 하는 고통으로 찾아오고 있었다. 욕망의 순도가 높을수록 저항의 의지는 꺼져 간다. 굴복해서는 안돼. 절대로. 그녀는 의지에 찬 첫걸음을 내 딛으며 욕망의 산을 넘으려했다. 게딱지같은 집을 나서자 이웃에 있는 노인에게 예슬을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고 단속한다. 별 힘도 못 쓸 노인이었지만 그래도 이웃으로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구부정한 허리에는 삶의 노련한 경륜이 시간의 풍파를 헤치고 나온 듯 무게질을 하고 있었다. 그 노인은 간밤에 내린 겨울비로 인해 길바닥이 얼어붙은 것이 못마땅 한 듯 알겠다는 답을 하였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는 혜숙의 발걸음은 비교적 가벼웠다. 거리에서 그녀가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이 서로 웃어대거나 헤어질 때 아쉬워 하는 모습을 보고, 혹은 연신 웃음을 주고받으면서 팔짱을 끼고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사람들의 이런 친밀로부터 흡족한 기분을 실컷 맛보고 있었다. 잠시 예슬이를 생각해본다. 예슬이는 일면으로 기수였고 그는 혜숙의 첫 남자였다.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혜숙은 이런 비약이 싫었다. 통속적으로 흐르는 자신의 생이 너무도 초라해 보이기 때문일까? 그래선지 스스로의 연민 속에서 어떤 탈출도 시도해 보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고독을 사랑했고 그러한 고독에 무슨 우월성이라도 존재하듯이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지 모른다. 새로운 우상을 만든 것이 예슬이었고 그 우상도 결국은 자신을 위함이었다. 예슬이는 혜숙이 지니고 다니는 부적이 되었고 그래선지 그녀의 액땜 구실을 철저히 해온 것이다. 부적은 그 효험이 다 되었다고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다. 처음의 영험을 기리며 불로 태우는 것이 부적에 대한 예우일 뿐이다. 사람들은 신들에게 있어 우리 인간은 여름날 장난꾸러기의 손에 죽음을 당하는 곤충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새들이 그 날개 짓을 할 때에도 반드시 신의 손길이 닿는다는 말도 한다.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던 신발 공장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찌푸린 하늘에 눈발이 날리더니 웬만한 지붕에 그럴듯한 그림을 그려 놓는다. 공장 지붕으로 빠져 나오는 불기둥이 덩어리 먹을 퍽퍽 토한다. 고무 타는 메키한 냄새가 역겨울 정도로 불은 공장 안에 있는 잡동사니를 마구 태워버리는 것 같다. 이따끔 화학 약품이 폭발하는지 불더미 속에서도 재채기하듯 색다른 연기를 뱉어낸다.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다면 이만한 불구경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황홀한 체험일 수 있다. 아니 내 집이 불에 조금만 그을리고 이웃 집으로 불길이 옮긴다면 그것도 환영할 노릇이다. 하여튼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성시를 이루었다. 불길에 휩싸이니까 건물이고 막사고 할 것 없이 걷잡을 수업을 정도로 마구 삼켜버리는 것이 장관이었다. 넋을 놓고 보니 불은 인접한 게딱지같은 집들로 번졌고 마치 장작이라도 떼는 것처럼 탁탁 소리를 내면서 잘도 타고 있었다. 삼복 더위에 지친 우렁이가 그 긴 혀를 내 뽑듯 불길은 침을 질질 흘리며 혀를 돌돌 말아 보잘것없는 범일동 판자촌을 모조리 쓸어 먹고 있었다. 사람들이 수선을 떨며 아우성을 치고 있을 때 겨우 소방차가 왔다. 사방에서 아구 작은 호스로 물줄기를 뿌리며 판잣집 지붕 위에 올라서서 야단들이다. 연신 흥이나서 넋 놓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불길에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연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집들이 거의 다 타들어 가니까 그제야 자기 집 걱정이 되는지 서로들 겁먹은 얼굴들이다. 불 속에서 불춤을 추는 소방관들이 안쓰러울 정도다. 거인과 아이의 싸움이라 할까?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소방대도 상대가 안 되는지 지붕에서 뛰어 내려온다. 하기야 실오라기만 같은 물줄기로 불을 다스리자니 불에 입장에서도 한심한 노릇 일게다. 이번에는 호스를 돌려 불길에서 먼 집들을 향해 물을 뿌리기 시작한다. 불길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듯 결사적이다. 그 통에 사람들은 그나마 세간 하나라도 끌어내려고 난리들이었다. 아이 한둘 죽는 것쯤은 쉬운 노릇이었다. 이제 어지간히 타들어 갔는지 그 많던 집들이 흔적만 남긴 채 앞이 훤히 뚫려있었다. 아무리 해도 불길을 다스리기가 벅차는 지 타고있는 것에는 손을 떼고 멀쩡한 집들을 헐기 시작한다. 사전에 불길을 차단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를 무시하고 불길은 잡히기는커녕 점점 성난 얼굴로 판자촌을 집어삼킬 태세였다. 얼마 전부터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불길 때문에 도리어 대낮보다 더 환할 정도였다. 소방대원 주민 할 것 사람들 모두가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전쟁을 겪은 지 얼마 안 되는 이 사람들에겐 오늘의 화재는 전쟁보다 더한 참사였다. 그래도 몇 시간을 버텨온 불 역시 자연이었다. 마침내 모든 것을 집어삼킨 불이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는지 피곤한 듯 잠들어 버린다. 사람들의 아우성. 울부짖음. 한겨울의 물벼락. 좋기만 하던 불구경이 삶의 보금자리를 순식간에 앗아간 운명의 장난이 되고 말았다. 발악으로 저항하며 끝까지 아쉬움으로 바라보았던 그 모든 사건이후 범일동 산가는 아수라장이었다. 전쟁보다 더한 혼란으로 가족을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노약자들은 간병자가 특별히 없었다면 찾는 일이 도리어 구차할 정도였다. 불에 탄 시구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난리 통에 아이들 밟히는 일도 예사로운 일이었다. 불. 부적 한장을 태우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희생이었다. 우상을 허물라는 신의 계명이었던가? 대궐로 들어가는 꽃상여의 깊은 뜻이 여기에 있었던가? 거룩한 죽음을 위하여 수많은 혼백들이 동행해야하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살아서 꽃을 피우지 못하는 '연화'를 위해 부처는 뭍 중생에게 죽음의 연꽃을 보여 주고 있었다.누추한 삶의 끝은 혼의 부활로 ...
슬픔에 관하여 말하는 그 순간 자칫하면 슬픔을 농락하는 꼴이 되기도 한다. 죽음 앞에서 초연해 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또 죽음에 애통을 보여줄 만한 여유도 없다. 일찍부터 탈출 의도가 있던 넋이 기회를 틈타 완전히 떠나 버린 기분이다. 아버지가 돌아 가실 때도 그러했다. 어렸다기 보다는 울음을 보일만한 여유가 없었다. 효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곡을 해야한다는 이지적 충고에도 나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슬픔에 있어서는 모두가 남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쁨은 그 기쁨에 동참함으로써 무슨 덕을 볼지도 모른다는 속셈이 있어 서로들 비집고 들어오려 하지만 슬픔은 그 자체가 불유쾌한 일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그 부담을 갖고 끼어들려 하지 않는다. 슬픔도 그것이 넉넉해야만 가능 한 것이지만 마음을 빼앗겨버리면 자신이 감당하기에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 남의 슬픔은 자신을 비껴간 운명에 고마워하며 음흉한 미소까지 띄우면서 철저히 즐기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그것을 대할 때는 영락없는 무기력으로 끌려가기 쉽다. 그래서 불행도 고독한 마음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른다. 혜숙도 남몰래 누려왔던 그 고독의 우월성을 다시 바라보아야 했다. 일상적인 행복이 참여하는 자의 수에 따라 반감한다면 불행은 그를 바라보는 사람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커지는 것. 불행이라는 놈은 모여든 사람의 불행의 여분을 빼앗아 당사자 앞에 그것을 내어놓아 버린다. 그러면 그 불행의 중압감에 눌려 혼절하거나 실성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삶의 무게에도 견디지 못하는 심장의 고통이 불행이 휘두르는 이런 짓에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불행의 동반자가 된다는 소리는 삼가야 한다. 자칫하면 아니 대부분의 경우 동반이란 눈물을 가장한 야비한 음모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가슴으로 몇 자를 적어 느낌을 전하면 슬픔의 그림자를 밟지 않고 자기의 몫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저 남으로 흘려 버리기에는 안타까운 응어리가 있기에 몇 자를 적어둔다.
눈물네가 세상의 끝으로 떠난 날너를 통해 바라본슬픈 이야기의 그림 삯.
너는 떼 묻은 손으로 사랑을 구하다가찬바람 부는 세상을 끌어안고 피를 토하고 만다.
하여 혼돈 속에서삶의 또 다른 태를 붙잡고 비상 못할 꺾인 날개에촛농을 붓고 만다.
부적힘이 다한 주술단지의 끝은 불로 사르고 공중으로 날려너의 부재를기억으로 간직 할 뿐.
네가 삶을 소원했을지라도태초의 그곳으로 돌아가 무지개로 남으면 진실의 소리는 햇살로 남으리.
나는 한 죽음을 열광했던 구경꾼의 심정으로 몇 자를 적고 만다.
자신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날. 혜숙의 그것은 예슬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아기의 생명을 받아드는 순간부터 그녀는 속박을 운명으로 받아 들였는지도 모른다.그러나 막상 그녀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를 되돌려 받게되니 어쩔 줄 몰라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하기만 한다. 억압은 그녀의 삶 속에서 사고를 이끌어온 기억 세포였고 기수를 기다리게 하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혜숙은 이제 그녀를 지탱해온 삶의 의미를 잃고만 것이다. 슬픔으로 대변할 수 없는 그 무엇이 혜숙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딸의 죽음이라기 보다는 그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그녀의 내부에서 완만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혜숙에게 대화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다. 말의 일방성은 전하는 자의 쾌감 받는 자의 부담이라는 생각이 그녀를 설득하고 있었다. 태식의 위로나 어떤 언어의 접근도 혜숙은 철저한 거부로 일관하였다. 도리어 전에 없던 신경질적인 반응을 통해 자신을 한번씩 여과하는 것 같았다. 혜숙이 태식을 화풀이로 해서라도 그녀가 받은 충격으로부터 조금씩 회복되어 간다면 태식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보다 혜숙을 더욱 사랑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혜숙의 어떤 것도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냉정함을 보이는 것이 혜숙을 강하게 하는 방법이기에 아무 반응 없이 그녀의 벽이 되어주면 그만 이었다. 자신의 학대와 자기거부의 상태에 이른다 할지라도 태식은 혜숙의 곁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태식에게 있어서 혜숙은 그의 호흡이었고 그의 심장이었기에 다른 어떤 선택도 없었다. 그녀의 아픔과 공허가 언젠가는 회복될 것이며 그때에는 기수보다 먼저 사랑을 확인시켜 주리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혜숙과 연애하고 있지 않았지만 애정이 깃든 호기심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욕망을 누르려는 내부의 규칙이 태식을 조정하는 까닭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육적인 관계를 멀리하게 하는 것이다. 태식의 인내는 혜숙을 돌려 놓을 것이며 그녀 스스로 그를 원할 때까지 그는 기쁨으로 그녀를 기다릴 작정이다.
혜숙의 세상 사람들과 태식을 향한 거부는 그녀의 약점을 숨기려는 보호 본능인지도 모른다. 신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아무리 가까운 태식이라 해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성숙하기 이전에 모성애를 느껴야 했던 사춘기. 피할 수 있는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한 어미로서의 자책감. 삶과 씨름을 하면서도 결국 혼자 뿐이었던 지금까지의 시간. 첫 남자인 기수를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무기력. 이런 것들을 보인다는 것은 치부를 내어놓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녀의 자존심과 교만이 누구도 용납치 않은 것이다. 아픔과 공허를 혼자의 힘으로 이겨내고 싶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전에는 시도도 해보지 못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과거는 이제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거나 적어도 커다란 영향력은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랑도 더 이상 특정 소수의 전유물은 아닐 것 같았다. 그녀에게 세상은 오직 두 부류의 사람들만 존재했었다. 사랑을 해본 자들과 사랑을 해보지 못한 자들. 그러나 이제 기수와 예슬이를 모두 잃은 이상 사랑으로 세상을 가름한다는 것이 무의미했다. 아니 사랑에 대한 기억조차 아련 하였고 모두가 전생에 이루어 졌던 일 같았다. 그리고 더 이상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자신을 낭비하거나 과거로 현실을 살고 싶지 않았다. 탈수 상태에서 벗어나 보다 윤기 있는 생활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녀에게는 처음으로 삶이 현실로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랫동안 그녀의 곁을 지켜준 태식이 더 이상 타인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혜숙은 이제 처음으로 그러나 아주 강렬하게 태식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혜숙에게는 과거도 없으며, 더 이상 자신을 옭아맬 아무 것도 없는 당당한 여자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새로운 사람에게 새로운 사랑을 나누어 주고 그로 더불어 새로운 인생을 꾸려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태식의 입장에서는 혜숙의 이런 변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갈등이 있었다. 최초의 패배가 있은 후 줄곧 혜숙의 곁에서 그의 의무를 묵묵히 해낸 것도 그녀의 과거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혜숙의 변화를 내심 바라던 바였지만 막상 그녀의 변신에 당장 어쩔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박기수가 드리운 환상 때문일런지 모른다. 그의 부재가 벌써 삼 년이 넘었고 그의 그림자였던 예슬이도 사라졌지만 현실의 햇살이 과거의 환상을 대신 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아마도 혜숙의 노력이 없었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예슬은 두 사람의 관계를 쉽게 변화 시켰다. 한 생명의 제물로 그들은 과거로부터 해방된 셈이다.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시간은 의식의 범위를 벗어나 빨리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토록 아팠던 기억도 언젠가는 잊혀지게 마련이다. 신의 선물 중 망각만큼 인간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잊혀지는 것으로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모순이 우리를 안심시킨다. 예슬이도 언젠가는 잊혀진다. 그래야만 태식의 삶도 보상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죽음조차도 기억의 언덕에서는 아름다운 추억이며 망각의 순간에 한번의 손짓으로 사라져 버린다. 예슬이의 죽음도 그렇게 잊혀 지리라. 구차할 만큼 질질 끌려온 서로의 생활을 은연중에 느끼고 그들은 서로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온갖 힘을 기울였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는 아닐지언정 언제나 촉촉이 대지를 적시는 보슬비로 서로의 심적 대지를 적셔주고 싶었다. 이렇게 진행되는 두 사람의 관계는 도리어 거룩하다는 생각이든다. 기다림의 미학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한 사랑의 행위를 그들은 기다림으로 익혀가고 있는 것. 두 사람의 관계는 영혼의 화합을 위한 일처럼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혜숙은 자신의 삶을 빠른 tempo로 다시 밟아본다.갈대밭.무수한 인간의 숲에서 어쩔 도리 없이 끼여든 삶. 수렁에 내린 뿌리는 그 시작부터가 다른 운명이었다.자신의 삶으로 대신할 갈대 숲에는 언제나 먹구름이 드리워 있었다.밤이 되면 어둠보다 더한 암흑이 모든 것을 덮어 버려 두렵기만 하였다.꿈결에 까마득하던 하늘이 슬금슬금 내려온다.검은 산에 걸린 달이 검정 세상을 덮어 버린다.하늘은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는 아침.소리를 질러대도 어딘 가로 스며들기만 할뿐 전혀 들리지 않는다.사람들은 낄낄거리며 실없는 웃음을 던진다.자신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죽음이 따라 다닌다.어미의 자궁에 있을 때 조부가 숨을 놓았다.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피곤한 몰골로 얼굴이 굳어 갔단다.에비도 폐렴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먼길을 떠났다고 한다.에미를 잡아먹은 날에 세상을 끌어안은 혜숙.모여든 사람들 모두가 눈물로 웃었단다.에미를 잡아먹은 핏덩이라며 모두가 두려워했다.그리고 이제는 자기의 핏덩어리를 먼 세상으로 보낸 에미.남편을 운명의 손길에 맡기고 어느 하늘에서 그를 찾게 될는지... 이제는 기억이 멀기만 한 생활의 깊은 상처들.하늘은 다시 높이 솟아 먹구름을 멀리 보내고 만다.처음 본 태양의 눈부심.강렬한 선에 끌려 웃음을 떠올린다.웃음소리.청아한 바람의 속삭임.박기수의 또렷한 환상.짧지만 비교할 수 없는 환희의 순간.처음으로 신에게 무릎을 꿇는다.낮 동안 할 수 있는 전부를 절대자의 앞에다 내려놓는다.어두운 밤.꿈이 되살아나 혜숙의 가슴을 누른다.검은 산 위에 검정 달이 걸린 날.하늘은 피를 토하여 온통 붉은 색.죽음의 손이 자궁 속의 아이를 긁어낸다.반항조차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복종해야 하는 아픔의 시간.눈물은 피로 변하여 강을 이루고 아기는 피를 핥으며 하늘로 오른다.- 천당으로 가려는가?- 가 로으옥지 금황 니아!이상한 주문을 외우고 아이는 사라진다.하늘이 솟아오르고 세상은 전에 없던 빛의 찬란함을 둘러쓴다.변화 없는 오랜 순간의 freeze.갈대 숲.자신이 걸어온 지난 스무 해의 샛길.바람으로 뒤엉킨 숲 속의 삶.이런 생각의 흐름 속에서 누군가를 의지해야겠다는 감정은 도리어 정상적이다. 죽음의 그늘에서 공포의 순간 순간을 넘겨보지 못한 사람은 지금 혜숙의 생각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모른다. 긴장으로 간이 타들어 가고 바늘 끝으로 찔림을 당하는 뇌세포를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완전한 절망으로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러한 절망으로는 세상을 여과시킬 수 없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폐허 속의 잔해에 지나지 않기에 그녀는 남자를 생각하게 된다. 박기수와 임태식 그리고 바다라고 하는 남자. 바로 곁에 바다가 없었다면 그녀는 질식으로 완전하게 죽어 갔을 것이다. 바다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건만 여태까지 그 바다를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토록 무관심으로 일관해 오던 삶이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환생과 다름이 없었다.
바다.인간으로 한없이 초라해 보일 때 문득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파도를 본다.한동안 곁을 떠나있던 뭍 사념의 순간들이 알알이 깨져바위를 핥는 정열의 고백으로 다가와서 이제 영겁동안 나를 지킬순수로 남는다.
붉은 해를 삼킨 날바다는 피를 토한다.그날 밤한 사람의 넋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대낮에 태양을 놓아주는 바다의 너그러움.
태식은 그녀와 항상 함께 있었다. 바다를 보는 것은 바로 태식이 일찍부터 그의 생활 일 부분으로 삼았던 일과였다. 이 일과를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는 감미로운 일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 예식과 같았다. 혜숙은 바다를 보기 위해 태식에게 이사를 권유했다. 사실 과거의 슬픈 기억이 흉터로 남아 있는 범일동의 생활은 진작부터 청산하고 싶었던 혜숙이었기에 바다를 핑계삼아 감옥 같은 곳을 벗어나는 것이 그녀의 뜻이었다. 태식은 이 감미로움을 지속하기 위해 그녀의 제안을 쾌히 승락했다. 동삼동으로 이사를 한 후에 그들의 생활은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가까운 곳에 늘 바다가 있었고 그 가운데 둘의 시간은 감미로운 대화로 이어졌다. 태식은 과거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한 시도는 태식이 무엇인가를 다시 찾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사랑하는 혜숙에게로 지향했던 자기 자신의 생각을 다시 찾아 처음부터 시작하려는 생각 같았다. 십년전 기수가 혜숙과 예슬이를 자신에게 맡기고 떠날 때부터 그의 인생은 혼란하고 질서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방관자로 머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들의 운명을 후회 없이 떠맡을 용기도 사실은 없었다. 예슬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태식은 자신의 삶과 혜숙의 그것을 연결시킬 수 있었다. 삶에 있어서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과 기수의 충고처럼 혜숙에게 솔직한 감정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만약 어떤 출발점에 다시 한번 돌아가서 사랑의 감정을 빠짐없이 천천히 되풀이해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삶의 시작일 것 같았다. 태식에게 있어서 한 여인을 사랑하는 일은 그의 삶 전부였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태식이 혜숙에게 그의 지난날을 고백한다.'어디를 가도 쫓아다니는 인간에 대한 불신이 지난 날 나를 지독히도 괴롭혔었지. 영도다리 위에도 해운대의 바다 내음에서도 나는 그것을 실감할 수 있었어. 오랫동안 동경하던 바다가 나의 신앙으로 바뀐 게 순간적인 착오였을 지도 몰라. 좁은 소견으로 세상에 대한 반감과 자기 학대를 하며 하루를 보내게 된 지난날이 부끄러웠어. 그래서 잠시라도 자신 속에 빠져서 내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지. 비록 보잘것없고 변명조차 부끄러운 삶이었지만 절대자의 뜻으로 이 땅에 떨어졌다는 생각을 하게되니 파도가 몰고 오는 기포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리고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은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있는 나의 입장이 다행스러웠어. 그 이후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눈앞에 보이는 보잘 것 없는 것에 넋을 잃지말고 혼을 위해 살자고 말이야. 어디서도 떳떳하고 싶었어.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기 확신이 중요한 것 아닐까?'밤바다.혜숙은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입을 연다.'내 나쁜 눈으로도 별은 너무 많군요. 저기 보이는 것이 은하수겠지요? 별의 별 이름 모를 별들. 눈물이라도 떨어질 듯한 깨끗함으로 하늘 높이 박혀 있는 별들.내게로 몽땅 떨어져 서로 부딪치면 파란 멍이 들 것 같아요. 그래도 그 멍이 오히려 별의 깨끗함을 더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맞아 보고 싶어요. 저렇게 하얀 결정들을 총총히 안고 있는 밤하늘이야말로 승화된 슬픔의 덩어리인지도 몰라요. 바다 바람이 쌀쌀 하군요.'대식은 주위의 나뭇가지를 긁어모아 불을 지폈다. 낯선 바닷가의 하루를 낯익은 얼굴로 채워보려는 노력. 불이 타오른다. 붉은 불이 활활 타오른다. 보라색 입술이 차츰 붉어지더니 혜숙이 말을 잇는다.'자신을 느끼는 감정이란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닌가 봐요. 무슨 말이냐 하면 혜숙이라는 객관적인 사람이 없어지더라도 혜숙이만 느낄 수있는 느낌 즉 내가 나를 느끼는 감정은 태식씨가 태식씨를 느끼는 감정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예요. 죽음이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다른 껍질을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작 수도 없는 자신의 기억이 도처에 흩어져 있다는 것 이예요.'혜숙은 불꽃을 응시하며 흩어지는 소리로 말을 한다. 불꽃은 노랑 빨강 보라 파랑의 형형으로 빛을 달리하며 색을 바꾼다. 각각의 색깔이 자신을 말하려 한다.노란색 - 여자의 노란 질투파란색 - 빠지고 싶도록 푸른 미소보라색 - 바람에 날리는 한 겹 머플러빨간색 - 옆모습의 붉은 입술불꽃은 술을 먹는다. 보라색 유혹에 붉은 색 뺨. 불이 타오른다. '요즈음은 느끼는 바가 많아요. 길을 걷고 있노라면 나에게 등을 돌리고 서있는 뒷 모습들이 하나같이 내 자신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어떨 때는 별안간 그것이 거울 속에서 보았던 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요. 나는 여태까지 모두를 남으로만 느껴왔던 거예요. 그래서 남으로만 대해왔던 것이고요. 그들이 모두 나라면 내가 나를 느끼는 그런 감정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한동안 한마디의 말도 태식의 입에서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벙어리처럼 입을 벌렸다. 마치 공기를 토하고 말해 버리는 것이 입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힘드는 벙어리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소리 대신 은은한 웃음을 보였다. 그는 혜숙에게 이해 받고자 하는 바로 그만큼 혜숙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그 자신을 믿고 싶어하듯 그 미소는 그녀를 믿고 있었다. 그의 미소는 그녀가 최선의 상태에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을 분명히 받아 들였다고 확인해 주는 것이었다.'십년이 넘도록...'대식은 혜숙의 손을 잡으며 혜숙의 입을 막았다. 붉은 혜숙의 입술을 태식의 그것으로 덮는다. 여자는 처음으로 육체의 감미로움을 맛본다. 무르익은 세월의 연륜과 남자를 욕망하는 내부의 자극이 그녀를 사랑으로 끌고간다. 그는 타오르는 입술로 여인의 몸 구석구석을 더듬어 갔다.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해 지는 세상. 그녀는 미동도 없이 그를 받아들인다. 바다 바람이라해도 그들의 열기를 식히기에는 힘겨웠다. 바람에 날리는 혜숙의 긴 머리카락이 남자의 가슴을 간지른다.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 이었던가? 태식이 지금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는 조급하지 않았다. 지난 세월을 앙갚음이라도 하듯 천천히 그녀의 이곳 저곳에서 삶을 찾고자 하였다. 그녀의 나신은 완벽하였다. 바닷가의 촌부라고 할 수 없는 우유 빛 살결. 슬픈 눈동자의 말없는 호소. 무엇인가를 갈급하는 색정적인 입술. 가느다란 목선을 타고 내려와 머문 곳에는 손바닥 하나를 감쌓을 수 있는 탐스러운 젖무덤이 자랑스럽게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고 그 위에 앵두 같은 유두가 놓여 있었다. 태식의 한 팔로 안기에 족한 가는 허리. 투박하지 않은 그녀의 둔부는 사슴처럼 탄탄한 다리로 지탱하기에 탐스럽기만 하였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천천히 음미하며 내려간다. 그녀의 발가락 사이에 낀 떼라 할지라도 그냥 넘어 가고 싶지 않았다.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두 몸이 밀착하였다. 이제 그는 혜숙의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밤바다. 밤바람. 밤하늘. 그 바람은 별이 노래하는 환상의 정사곡이었다.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는 청중의 갈채. 별.별.별.혜숙은 이제 처음으로 남자의 맛을 본다. 묵직한 무엇이 목구멍에 걸린 듯한 갑갑함이 그녀를 계속해서 누르고 있어도 좋았다. 혜숙의 입술은 저절로 열렸다.도리어 질식할 것만 같은 쾌감.지구의 공기가 한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숨가쁨.무인도의 돌 바위. 비바람의 침식으로 바위에는 숱한 상처.거대한 파도가 그 바위의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바위는 살아 있는 율동으로 몸을 떤다.파도가 몇 차례 드나들더니 바위는 무너져 내린다.무너져 내린다.무너져 내린다.썰물.
그녀는 죽은 듯 조용하였다. 조금 전의 모든 것이 꿈결같이 아련하였다. 춥다.모닥불의 장작이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최후의 산화. '추워요. 이제 집으로 돌아가요.''그러지!'살 내음. 체온. 살 냄새. 그리고 체온. 또 살 내음.마치 수 천년 전의 사건을 더듬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으로 대식은 뇌속에 있는 사랑의 광맥을 더듬어 간다. 살 내음. 체온. 살 냄새. 여자의 체온. 땀. 그리고 호흡. 남자의 거친 숨소리. 살 냄새. 그리고 체온 또 살 내음.대식은 십 년이 넘도록 추적해 오던 광맥을 마침내 찾은 것이었다. 그 광맥은 폐광이 되어 일시적으로 남의 눈을 벗어날 수 있었으나 태식의 지도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눈물이 나고 숨이 막히고 감정이 격해질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다시 내려온 현실에서 태식이 입을 연다.'혜숙이! 시간의 공유성을 인식해 본 적 있어?''......''십 년 생활의 동참자라면 적어도 오 년은 그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나누어 준 걸로 생각하면 되. 달리 말하면 지난 십 년의 세월 가운데 5년은 혜숙과 내가 크고 작은 일에 혹은 싫건 좋건 서로가 상대방의 삶에 관여했다는 거야. 단역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말이야. 가령 혜숙의 고통 속에 있는 또 다른 고통의 절반은 내게로 향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아니 당연히 나의 소유라고 할 수 있다는 거야.''......'혜숙은 태식의 입술을 손으로 막고 그의 가슴속으로 묻혀든다. 일상적인 욕망과 다른 한 여인의 오랜 가뭄을 대식은 적셔줄 수 있었다. 혜숙의 이와 같은 접촉은 말보다 강한 웅변으로 태식의 가슴을 쓸어 주었고 그들 삶의 새로운 돌파구를 향한 약속이었다. 이제 신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던 나약한 인간의 복종은 그 끝을 향해 달려간다. 한 남자의 때 이른 여자였고 세상을 떠난 한 생명의 어머니였던 그녀의 과거는 지난 세월의 흔적으로 충분하였다. 삶이란 타인의 말로 옮겨지면 쉬운 것이나 그 내면을 읽어보면 그렇듯 어려운 것이 없다. 아름다운 꽃이 그 향기와 자태를 갖기 위한 노고 조차 짐작하기 어려울 진데 하물며 사람의 그것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혜숙과 대식은 서로를 알지 못하고 지난 십 년을 함께 가다가 오늘에야 처음 만난 사람과 같았다. 항상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었던 별자리를 오늘에 와서야 깨달은 것이다. 밤의 풍요로움을 깨달은 것이 그들에게는 커다란 축복이었다. 메마른 살갗을 쓸면서 그다지 큰방은 아니지만 서로의 삶을 방관하기만 하였던 긴긴 밤들이 이제야 비로소 풍요로움으로 새로운 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생소하고 낯설기만 하였던 밤으로의 여행이 도리어 설래임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굶주리게 했던 모든 훼방꾼을 몰아내고 밤은 전적으로 그들의 것이 되었다. 주위의 모든 행복에 대해서 더 이상 움츠려 들지 않고 당당하게 지금의 행복을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거의 짐을 벗어 던진 대식은 이제 더 이상 박기수의 그늘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혜숙이가 소유한 운명의 중심으로 치환하기 시작했다. 실력이 비슷한 남녀 배우의 이름에 눌려 조연으로 머물렀던 과거를 청산하고 당당히 주연으로 발탁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환상에 사로잡혔던 과거를 과거로 던져버리고 현실의 햇살을 향해 앞으로 나섰다. 사물을 관찰만 하던 준비기간을 지나서 이제 전면에 스스로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불행은 행복을 공유하면서 세력다툼을 하다가 주인공의 뜻에 따라 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식도 운명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까닭에 스스로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십 년의 세월동안 그가 지켜보았던 변화는 결국 스스로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아원. 버려진 아이들. 핏줄. 기수의 얼굴. 새로 태어난 삶.... 지난 기억의 편린들이 눈에서 어릿거린다. 한 인간과 십 년의 이별을 통해서도 박기수의 얼굴은 지울 수 없었다. 더욱더 명료해지는 박기수의 얼굴. 그의 얼굴이 예슬의 웃음소리가... 밤. 밤이 깊어 간다. 우리는 행복이 곁에 있을 때 그것의 가치를 잘 모른다. 실상 그것의 가치를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은 우리의 곁에 있지 않은 적이 종종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혜숙의 지금까지의 삶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신보다 현실적이면 현실적일 수 있어도 한상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끌려 다니지 않는 것 같았다. 이미 자신의 속으로 들어온 여자가 과거에 메달려 환상의 끈을 붙잡고 발버둥치리라고는 그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잠재에서만 존재하던 환상의 낯이 현실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두 번째 출산을 앞두고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었다. 그녀는 모성애로 사춘기를 보내었고 그것이 그녀가 하늘로부터 받은 유일한 자질이었는지 모른다. 그랬던 것이 피해볼 도리 없는 어떤 형벌로 인해 자신이 분만한 최초의 혈육을 빼앗긴 후로 그녀의 모성애는 광적으로 변해갔다. 사랑의 열매로 세상에 나올 혜숙의 두 번째 아이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신으로써도 막을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분만한 아이에게 생명의 씨앗을 뿌린 사람이 태식이었다면 그 아이의 생명을 거두어 갈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현실과 환상의 피할 수 없는 마찰. 필연의 현상은 한 여름의 꿈처럼 시작되었다. 더위에 지친 달이 새벽의 산을 넘어 아침 햇살에게 시간을 물려주고 한 여름의 태양이 붉은 하늘의 색을 덧칠하며 더위를 더해갈 때. 스물 네 시간 동안의 진통을 악을 쓰며 참아내는 혜숙과 옆에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 견디기 힘들지만 그 생명의 전달은 분명하고 끈질기게 이루어졌다. 새벽을 가르며 한 생명의 함성이 터져 나오다가 곧이어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계집아이의 울음소리는 조그맣게 한번의 신호를 날리고 나서는 여운이 없었다. 세상을 향한 최초의 여행이 그리도 힘들었던지 한참만에 두 번째 울음을 던진다. 혜숙과 태식의 삶이 객관적으로 공유되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사랑을 증거할 생명이 세상으로 내려온 것이다. 계집아이의 얼굴은 혜숙 그대로였다. 아직도 핏덩어리에 불과 하지만 어미의 모습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 태식에게는 사랑이 하나 더해진 셈이다. 고통의 순간은 오래오래 기억되고 천천히 흘러간다. 사라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세월을 붙잡아 놓으려고 한다. 그러나 희열의 순간은 화살과 같이 날아가 버린다. 인생이 고행이기 때문에 그 끝을 향해 빨리 달려가는 지도 모른다. 아이의 이름은 현아라고 불렀다. 반달의 아름다움은 보름달의 천박함과 비교가 안 된다. 완전한 것은 쉽게일그러지고 파괴되는 까닭에 반달을 생각한 듯하다. 혜숙에게 새로이 열린 삶은 아름다웠다. 그것은 새롭기 때문이기도 하다.





셋.

천 구백 칠십 사년.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도 스무 해가 지났다. 사회의 지각변동은 심한 변화를 거듭하였고 시민들은 가슴으로 자유의 소리를 듣고자 하였다. 십여 년 전 늙은 지도자와 그 밑에서 온갖 만행을 저지르던 권력의 시녀에 대항하여 죽음으로 새로운 자유 질서를 확립했던 젊은이들이 숨막히는 독재의 장기 집권을 반대하며 바른 소리를 외쳐댄다. 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뛰어나오기 시작하였으며 철권을 휘두르는 통치자는 이것을 용납하지 않아 파행이 거듭되는 상황이었다. Napoleon의 황제 즉위로 그의 절대 권력이 서서히 허물어져 간 것처럼 이 통치자와 추종자들도 그들의 이익 집단을 지켜 나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태식과 혜숙도 그들의 보금자리를 서면으로 옮겨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사회에서의 성공은 정서적인 완성보다는 물질의 부로 번호를 메겨가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서 혼란은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서울은 서울 나름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들떠 움직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표류하는 난파선이 도리어 분명한 끝이 보일 것 같았다. 문화란 그 존재를 상실하여 권력에 아부하는 내시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학계와 문화계도 양분되어 오직 두 부류의 사람들이 이합집산 하는 이동의 장소로 전락되었다. 어용과 재야. 흑백논리 속에서 목소리 큰 자들의 고함이 죄인의 수만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학생들의 외침을 막기 위해 대학의 문을 닫기 시작했으며 의식 있는 젊은이들은 민주 사상의 거대한 조류에 휩쓸려 보장 없는 내일을 위해 투쟁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배부른 돼지가 되기를 거부한 젊은 대학생들은 개처럼 군대에 끌려가 최전방으로 배치되었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재야 인사들은 사상범이나 이적단체의 끄나풀이라는 죄명으로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다. 반대의 소리는 숨조차 쉬기가 힘들었다. 마치 전체주의가 현 상황을 끌고가는 힘이 된지 오랜 듯 어떠한 반항도 용납하지 않고 공포의 나날로 국민을 몰고갔다. 서울에서 견디다 못한 지식인들이 지방으로 잠적한 지도 오래 전의 일이다. 감시망을 벗어난 어떤 모임도 불가능하였다. 혹 작은 모임이라도 있을라치면 곳곳에 첩자가 끼어들어 그 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참석자 보다 더 자세히 상부에 보고하고 있었다. 문단도 어려운 숨을 쉬어가고 있었다. 몇 번의 고난을 겪으면서도 필봉을 굽히지 않는 이기도 시인은 이 시대를 밝히는 젊은 양심이었다. 외부로부터의 압력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그는 세상을 향해 의연히 자기의 것을 토해내고 있었다. 통치자의 입장에서 그는 눈의 가시보다 더한 표독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마저 개처럼 취급하면 젊은 이들의 반발로 역효과가 날 것을 잘 알고 있던 고위층에게 그는 고름 부위의 중심과 같았다. 이기도 시인은 항상 바로 섰다. 누군가 매를 들면 웃음을 보이며 그 매를 맞았고 침을 뱉으면 도리어 뱉은 자를 불쌍히 여겼으며 어떠한 어둠과 고통 속에서도 그는 그의 양심을 잃지 않았다. 일전에 이름 없는 지방지를 통해 그는 자신의 양심을 털어 놓은 적이 있다. 보나마나 무서운 고초를 당했을 것이고 별 볼일 없던 그 지방지는 폐간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이기도 시인의 명성은 날로 높아갔고 그의 경력에 훈장 하나를 더 단 셈이었다. 그리하여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 시인의 인기는 동지애를 느낄 정도로 가까워져 갔다. 그는 살아있는 시대의 양심으로 불리며 젊은이들의 기상을 고취시키고 있었다. 그의 글은 지금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들려오는 구전의 전설로 생동감을 더하며 젊은이들을 붙잡았다. 새벽이 있기에 그는 울어야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겁내지 마오.
누군가 주먹질 할 때겁내지 마오.세상 사는 동안 그것이 두려워도 한번으로 끝나는 것을
누군가 입을 틀어막아도 피하지 마오.이승에서 못한 말하늘에서 꽃피우니그런들어찌하리오.
누군가 귀를 친다 해도 도망치지 마오.들리는 모든 것이 거짓임을 언젠가는 모두가 알게되리.
시인이 먼길 떠날 때그것도 즐거움이 아니겠소무거운 짐을 홀가분히 벗어 던지고 마침내 안락의 날을 갖게 되리니...
시인은 사회의 격리로부터 풀려나와 투쟁의 전선으로 복귀하였고 그후로 전보다 날카로운 필봉으로 세태를 비판하는 그의 책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동지로 느껴질 정도의 그 였기에 초청 강연에 불려다니는 것은 예사였다.부산대 초청 강연이 있던 달이다. 신문지상에는 더 이상 오르내리지 못하는 이름이었기 때문에 발로 뛰며 그의 강연을 알리는 벽보를 붙여야 했다. 시내 곳곳에 벽보를 부치며 일반 시민에게 홍보해야 하는 학생들과 그를 저지하려는 관권 사이의 충돌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학생들의 전단이 거리에 나돌고 있었으나 조직적인 집단의 강압적 방해 전략으로 희생당하는 쪽은 학생들뿐이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태식과 혜숙 부부도 이미 여러 번 목격한 장면들이었다. 하루 벌이로 연명하는 사람들에게 학생들의 과격한 행동을 이적행위로 몰고 강사로 초빙된 연사들을 선동가나 주동으로 모는 세상이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으나 중학교에 다니는 현아를 생각 할 때 이런 모습들이 안쓰럽기만 하였다. 초청 강연이 있는 바로 전 날의 일이었다. 전단을 만들어 시내로 뛰쳐나온 대학생들과 전투경찰의 대립이 어는 선을 넘어 서더니 서로 파괴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힘에 부친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고 전투경찰들은 사냥감을 만난 포수처럼 끝까지 추적하여 포획의 쾌감을 갖기 위해 광분했다. 시장 바닥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었고 경찰이 휘두르는 곤봉에 머리가 깨진 학생들의 머리에서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 사냥이었다. 세상이 왜 이리 돌아가는 것일까. 아비규환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던 상인들이 일찌 감치 문을 닫기 시작한다. 자식 둔 사람이 이런 광경을 지켜보았다면 누구도 통치자를 두둔하지는 않을 것이다. 독재의 몽둥이로도 양심을 가리지 못한다. 불행한 세대.혜숙과 대식은 일찌감치 가게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갈 작정이다. 혜숙은 길거리에 내 갈겨진 홍보용 전단을 하나하나 주워서 조금 전의 소동을 피해 가게의 구석에 숨어있던 학생에게 전해 준다."아주머니 감사합니다.""무슨 일을 하더라도 몸은 상하지 않도록 조심들 하시구려. 몸이 상하기라도 하면 부모들 심정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괴로울 테니까 말이에요.""아주머니도 하나 받아두세요." "나 같은 사람은 무슨 뜻인지 이해도 못할텐데...""다 같은 한국 사람들인데 보면 모르겠습니까? 지금의 상황은 말로 설명할게 못되지요. 잘못 된 것은 반드시 시정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역사의 증인으로 현실을 기억해야 하는 책임이 있으니까요.""좌우간 고마와요.""원, 별 말씀을.. 고맙다는 말씀은 제가 드려야지요."학생은 전단 꾸러미를 받아들고 속옷에 깊숙이 찔러 넣더니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핀 다음 밖으로 뛰어나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골목을 빠져나간 젊은이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혜숙은 그 학생이 주고 간 전단을 받아 들고 무심히 들여보기 시작했다.- 이기도 시인 시국관련 초청 강연관심 없이 글자를 따라 대충 흘러가던 시선이 연사의 사진에 이르러 멈추고 만다. 혜숙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있던 전단을 땅에 떨어뜨렸고 전단에서 본 사진의 충격이 심했는지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서있기만 하였다. - 이기도 시인.
초청강연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워낙 충돌이 컸던지라 상해자가 많았고 학교측에서도 더 이상의 불상사는 원치 않았기 때문에 관의 지시에 따르기로 했던 것이다. 강연 한번 하지 못한 이시인이 모든 책임을 지고 속죄양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예상보다 피해자가 많았기 때문이며 공권력에 손상을 입힌 학생들에게도 경고를 주기위한 지극히 당연한 처사였다. 이 사건 이후로 이기도 시인은 지명수배가 되었고 지하로 숨어든 그는 잠적 생활로 그의 양심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이기도는 얼굴 없는 시인으로 남아 껍질뿐인 문단을 떠나게 되었다.
혜숙의 생활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활인으로 철저히 자신을 지켜가던 그녀에게 갑자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전에는 그렇게 바삐 돌아다니던 가게 안에서도 정신을 딴 곳에 둔 사람처럼 먼 산만 바라보게 되었고 가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넋을 놓고 있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정상을 벗어난 변화는 쉽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웬만한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혜숙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혜숙을 말없이 지켜보던 태식도 그녀의 상태를 방관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혜숙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한 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식은땀을 흘리는 것은 예사였다. 매사에 별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삶이자 의미인 현아에 대한 보살핌과 모성애도 시큰둥하게 해 버리는 것 같았다. 집안 살림은 완전히 태식의 소관이 되었다. 혜숙의 건강 상태로 더 이상 혼자서 장사를 꾸려가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에 용달차 하나로 운수업을 하던 대식은 차를 정리하고 가게에 달려 붙어야 했다. 혜숙의 곁에서 그녀를 돌보며 함께 장사를 하겠다던 태식의 계획은 머지않아 빗나가고 말았다. 혜숙의 건강이 점점 나빠져 헛소리를 하기 예사였고 날카로워진 신경으로 주위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중학생인 현아가 엄마를 간호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태식이 일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혜숙은 점점 자신을 학대하며 외부와 문을 닫기 시작했다. 긴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미친 사람처럼 동네를 활보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태식의 운명은 어둠과 같았다. 새벽이 오기전 자신의 소유가 되었다고 믿었던 사물이 여명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운명. 사랑의 열매로 거둔 현아를 바라보며 지겨운 운명을 노래하는 그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어느 틈에 그의 생활은 술이 자리를 잡고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한다. 괴로운 삶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두운 현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을 욕심으로 건드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지금의 상황이 그들에게 할애된 운명의 본 모습인 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식은 혜숙을 사랑하기 때문에 운명에 백기를 들고 굴복할 수 없었다. 몸부림을 치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를 향한 집착을 포기할 수 없었다. 미쳐 가는 아내를 지켜보며 헌신하는 그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그가 가진 것의 전부였으며 자신의 삶이었다. 그녀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지도 않았고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세상의 끝이어야만 했다. 밤.모두들 잠이든 세상에 운명이라는 것이 깨어나 혜숙의 몸을 흔든다. 조용히.대식은 술로 길들여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현아도 어머니의 병간호로 항상 잠이 부족한 상태였다. 모두가 잠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오는 혜숙. 밤이 되면 잃었던 정신을 되찾기 위해 신들린 사람이 된다. 그녀는 밤으로 다시 태어나 세상을 활보한다. 아무도 가로막는 이 없는 산길을 익숙하게 오른다. 범일동. 박기수를 만났고 그와 사랑하여 예슬이와 전설을 키워왔던 그곳. 밤이 되면 그녀의 고향으로 변해 버리는 산마루 범일동.
검은 산에 검은 달이 걸릴 때면 징그럽게 유혹하는 그 산.혜숙에게 웃음을 가르쳐 주고 다시 빼앗아 간 바로 그 산.곧 돌아 오리라던 약속으로 십 년을 기다리던 믿음의 동네.산은 거짓말을 안 하리라고 믿으며 기쁨으로 살아오던 동네.이제 그 산이예쁜 꽃상여를 만들어 준다더라예슬이를 데리고 떠난예쁜 꽃상여.
혜숙이 밤을 헤치고 돌아다닌다. 낮 동안의 정신으로는 어림도 없는 그 길을.그녀는 소원한다. 밤이 끝없이 계속 되기를, 한없이 길기만 하기를.날이 새지 않았더라면 예슬이와 함께 기수를 마중 나갔을 것을.하지만 예슬이는 꽃상여 타고 먼길 떠났다지.어느 밤에 두통의 편지를 남기고 떠난 그를 찾아 밤으로 헤매는 혜숙. 산 위에 올라 바다를 내려본다.영도다리가 물위를 가로질러 인연의 양 끝을 엮어 놓는다. 저기라면 끊어진 사랑의 실도 다시 이러 주리라.다리 위에서 기수씨와 예슬이를 찾아보리라. 서로 얼싸 안고 눈물을 흘리며 지난 이야기를 끝없이 풀어놓으리라.
혜숙은 범일동 산동네를 빠르게 빠져 나왔다. 밤마다 찾아가는 고향을 떠났다. 기수를 떠났다. 예슬이를 떠났다. 맨발로 밤을 가로질러 바다를 굽어보는 산을 넘어. 아무도 없는 적막이 고마왔고 방해꾼 없는 영도의 반김이 너그러웠다. 누가 보는 가운데서 잃어버린 가족과 상봉하고 싶진 않았다. 예슬이를 먼저 부른다.
예슬이는 꽃상여를 타고 용왕님께 시집갔지.예쁜 그것을 타고 말이야. 그런데 예슬이 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상여꾼으로 함께 떠나지는 않았을 텐데...다시 오마고 했으니 기다리면 돌아오겠지.예슬 아버지! 기수씨!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들.못들은 게 아닐까?잠든 것은 아닐까?혜숙이 다리 위로 오른다.조금 전까지 숨어 있던 검은 달이 바다 위로 비친다.산 위에 걸려 있어야 할 바로 그것이 물 위에서 춤을 춘다. 오늘은 잃은 가족을 만나는 날.이번에는 헤어지지 않으리. 영원히.다리 위에서 바다를 안으려는 그녀가 바다로 몸을 날린다.인어처럼 꼬리를 감추고 바다로 들어간다. 은빛 물 무늬 위로 달이 얼굴을 내민다.한 생명이 남긴 물결을 만지고 쓸쓸히 사라진다.
간밤에 있었던 투신 자살로 영도 일대는 혼란했다. 시국이 어지러운 탓인지 사람들이 금방 구경꾼으로 변해 몰려든다. 반쯤 정신이 나간 태식이 축 늘어진 혜숙의 몸을 뒤흔들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의 울음은 절규였으며 그녀의 혼을 부르기 위한 혼령제의 통곡이었다. 주위의 사람들과는 상관이 없는 세상의 종말이었으며 그의 주위를 맴돌던 운명이 정지되는 순간이었다. 사랑으로 지탱했던 삶이 산산 조각난 셈이다. 현아는 그의 곁에서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 울어야 하는 것조차 잊어 버린 듯 어머니를 끌어안고 있는 아버지의 절규를 멍하니 들어야 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혜숙의 운명을 바라만 보고 있던 태식.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현아 밖에 없다. 어렵게 돌려 받은 사랑을 다시 하늘로 빼앗겨 버린 후 혜숙이 가지고 있던 운명의 그림자를 태식이 짊어져야만 했다. 사랑을 빼앗긴 자의 허탈감. 다시는 빼앗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그녀를 지키려 했는데도 혜숙은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었나 보다. 그는 우주에서 천년의 세월을 외롭게 지켜야 하는 신의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의 것은 언제나 그러했다. 귀한 것을 전부 받은 듯 헀으나 쉽게 잃어야 했던 과거를 살펴보면 더욱 확실해 진다. 3대 독자 부농의 아들이었던 것도 과거요, 왕초의 자리에서도 박기수에게 혜숙을 빼앗긴 처지나 지금 완전한 자기 여자였던 혜숙을 보내야 하는 처지는 초라한 약자의 서글픈 하소연.
며칠 동안 술로 위로를 받았던 태식. 술 없이는 한 순간도 제 정신으로 지탱할 수 없기에 어제와 다른 시간에 어제와 다름없는 술을 또 들이키기 시작한다. 몸을 한 바퀴 돌고 전해지는 술기운이 자신을 학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너에게 남은 것은 이제 현아 하나! 분명히 환청이었지만 고막에 생생히 남아 있는 그 소리가 태식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부모의 처참한 운명을 딸에게까지 되풀이시키고 싶지는 않았고 하나 밖에 없는 현아 마저 잃을 수는 없기에 그는 부산을 떠나야 한다는 결심을 한다. 운명의 시작은 이 지겨운 땅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혜숙을 빼앗아간 바다가 싫다. 이 지옥 같은 비린 네가 싫다. 부산 땅이 싫다.
헤숙을 흙으로 돌려보냈다.삼십 여 년을 웃음보다 울음으로 누림보다는 기다림으로 지낸사랑하는 여인을 땅으로 떠냈다.바다를 사모하던 혜숙.산을 좋아하던 혜숙.당신과 이 땅을 떠나리다.바다를 등지고기억을 묻어 버리고 악연으로 맺어진 이 곳을 떠나리다.나의 사랑 안녕혜숙 안녕.
하나 뿐인 사랑을 잃고 그는 바다를 떠난다. 과거를 지우고 기억을 떨쳐 비리고.
천 구백 팔십년.전쟁으로 혈육을 잃고 가족을 떠나 보낸지도 어느덧 삼십 년의 세월.철권 정치로 국민을 신음 속에서 헤매게 했던 통치자도 하늘의 뜻은 거역할 수 없는 듯 권좌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고 사라져 갔다. 억눌리고 암울하던 시대가 가버리니 저마다 할 말이 많았다. 권력의 시녀로 충성과 아부를 보이며 처세로 세월을 쫓던 철새들이 어느새 민중의 투사로 바뀌어 버린다. 과거의 그림자를 버리고 지사들이 되어 민주의 공기를 찾아 나서는 철새들. 한 시대의 양심으로 고난과 불이익을 감수하며 바른 소리를 굽히지 않았던 이기도 시인이 그들의 몰염치를 준열하게 꾸짖는다. 유배의 세월 동안 갈고 닦은 그의 보검을 휘두르며.
- 못된 놈들.
그대들 기억하는가.녹슨 검을 휘두르며망나니 짓 하던 무리를.아첨과 처세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던참새 떼들을.
그대들 기억하는가.주먹 휘두르던 백정의 무리를.완력과 강압으로입을 틀어막던깡패 떼들을.
용서하지 마오.밤이 깊을 때뒤로 돌아와 해꽂이 할그 못된 놈들을...
이기도 시인의 칼날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용서를 할 수 없다는 그의 양심에 많은 젊음이 뒤를 따른다. 우리에게도 바야흐로 민주의 봄이 도래한 것이다.이기도 시인의 복귀는 대학가에서 그의 인기로 불이 붙었다. 초청 강연으로 바삐 뛰어 다니며 젊은이들의 양심에 혼을 심어주는 그만이 정작 살아 있는 자 같았다. 서울에 있는 대학치고 이 시인을 연사로 초청하지 않는 대학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의 행적이 News거리가 되었고 바쁜 일정에 쫓겨다니던 그가 서울역을 지날 때 교통사고가 났다는 기사도 화제가 되었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지게꾼을 치었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보았던 당시의 권력층이 즉흥적 발상으로 지게꾼들을 서울역에서 몰아 내었다. 거리의 미화에 방해가 된다고 그들의 밥벌이를 졸지에 빼앗아 버린 것이다.
여기까지 달려와서 이 사십대의 주인은 말을 끊고 만다. 우리는 이기도 시인을 몇 번이나 읊었다. 우리의 젊음이 이 주인에게 퇴폐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시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무슨 각설을 떠벌이는가 준열하게 꾸짖는 것 같았다. 얼마전에 이기도 시인과 지게꾼의 일을 가십으로 읽은 것이 기억난다. 아무도 내막을 알수 없는 일이지만 이로부터 두 달쯤 후에 이시인의 자살이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민주의 봄, 문화의 봄을 다시 맞은 그가 어떤 외압에 못이겨 자살한 것인지 누구도 그 죽음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시인의 죽음은 희망으로 살아가는 많은 젊음에 독침을 쏘았다. 우리의 횡설수설도 시인의 죽음이 남기고 간 상처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나 그의 부재는 전보다 더한 혼란을 야기했다. 한이석이 화가의 관찰력으로 질문을 한다."아저씨! 임태식이라는 사람과 박기수씨는 후에 어떻게 되었나요? 그림으로 보아서는 그 병실의 대화가 마지막 장면 같지는 않거든요.""현아라는 아이는 지금 뭘하고 있나요?"뒤이어 상훈이 의문의 답을 구하려고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고 질문을 던진다." ......"사십대의 주인은 아무 대꾸도 없이 소주병을 새로 따더니 우리에게 한잔씩 권한다. 최형규가 손을 뻗쳐 병을 잡으려하자 그는 젊은이에게 술병을 빼앗기지 않고 반쯤 남은 병을 병체로 들이킨다. 영문을 모른 채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그는 한동안의 침묵으로 우리의 궁금증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대화를 주고받던 우리가 그의 이야기에 정신을 팔려 기가 죽은 셈이다. 한마디로 그의 이야기는 압권이었다. 최형규는 뜻을 굽히지 않고 사십의 주인에게 유도심문을 한다. "아저씨! 이기도 시인과 가깝게 지낸 게 얼마나 되었나요?"사십대의 주인은 어느새 담배 하나를 꺼내 물고서 불을 당기려 하였다. 나는 앞에 있는 성냥을 주워 그에게 불을 당겨 주었다. 가벼운 눈인사로 예의를 표한 그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다음 짙은 연기를 뿜어낸다. "아저씨! 아까 읊어 주신 '못된 놈들'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시인의 미발표 작품인데 그걸 어떻게 알고계셨나요?"나도 그의 침묵을 몰아내기 위해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을 던졌다. 사실 그가 어떻게 해서 이시인의 시를 알게 되었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젊은이들 술이다 합시다."우리의 집요한 질문에 갈증을 더하려는 듯 그는 동문서답으로 일관하였다. 한이석이 한번 문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집요함으로 그에게 달려든다. "박기수씨는 지나간 세월 동안 서울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어째서 이십 년 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던 거지요? 그에게 있어서 사랑했던 여인과 핏덩어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건가요? 그는 세상적으로 대단한 성공이라도 한 건가요?""우리 술이나 합시다."사십대의 주인은 전과 다름없는 행동으로 우리의 빈 잔을 채우고 병을 입에다 부어 넣었다. 그는 우리의 질문에 어떤 대꾸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 '겁내지 마오'는 신문사 폐간 사건이후 출판 금지된 작품인데 그걸 어떻게 한자도 틀리지 않고 기억하고 계신 거죠?"권상훈이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범인을 취조하듯 다그친다."아저씨! 이기도 시인의 직접적인 죽음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기도 시인과 지게꾼과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게 아닐까요?""임태식도 지게꾼으로 서울에서 유랑을 했는데 그와 지게꾼이 무슨 끈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최형규가 심증을 잡은 듯 추리를 해간다."그렇다면 이기도 시인은 뭐야?"한이석이 되묻는다. 우리는 추리 소설을 읽어 가듯 흩어져 있는 퍼즐을 꾀어 맞추기 시작했다. 그래도 확실한 대답을 끌어낼 물증은 찾을 길이 없었다. "이기도 시인의 과거는 밝혀지지 않은 점이 많아. 준수한 외모의 그가 어떻게 해서 소아마비 아내를 만나게 된 거지? 그의 작품을 봐도 과거에 대한 추억이나 그리움을 표현한 것은 아주 드물거든. 이 시인의 출신은 완전한 비밀 투성이..." 권상훈이 사십대의 주인에게 묻기를 포기한 듯 혼자서 시인의 과거와 오늘의 대화를 짜 맞추고 있었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일전에 월간지에 특집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에도 이 시인이 아내를 만나게 된 경위는 의도적으로 피했던 것 같아. 가족 사항은 아예 기재를 안 했거든. 그 때는 도리어 이기도 시인답다는 생각에 신선하기까지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 같아.""가족사항이 기록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이 시인이 고아라는 생각이 들어. 이 시인의 나이를 역산하면 그가 전쟁 고아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비약은 아닐까?" 상훈은 시인의 과거를 추리하면서 우리의 동의를 구하려는 듯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러자 누군가 그의 발빠른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된 사람이 한둘은 아니지. 설령 그가 전쟁 고아라고 해도 그것과 이 사건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야? ""당장에는 상관이 없는 것들도 하나둘 짜 마추다 보면 서로 단서가 될 수 있으니까 과거의 배경을 무시하지는 말자는 거야. 이 시인의 출신을 추적하다 보면 짐작가는 단서를 찾을 수도 있지 않겠어?"최형규가 상훈의 입장을 대변하며 신중을 기하였다. "보잘것없는 전쟁 고아였다면 계층이 다른 부잣집 딸과 어떻게 결혼을 했지?""이시인의 명성이었다면 재벌의 딸들도 줄지어 서 있었을 꺼야.""그거야 명성을 얻은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지. 전쟁고아였다면 이 시인 같은 학벌은 구비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혹시 부잣집 데릴사위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예를 들어 학업에 열심인 고학생과 그의 후견인이었던 부모. 순진하고 성실한 고학생의 미래를 보장하고 그의 양심을 미끼로 데릴사위가 되기를 강요했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거야."나는 이유 없이 난도질당하는 시인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미 사자가 된 그를 다시 한번 장사지내는 것 같아 미안했다. "비밀을 파헤치는 것은 좋은데 이기도 시인을 욕보이는 것 기분이 찜찜해."한이 석이 나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나의 말을 대신한다. "진실을 밝힌다고 해서 죽은 이기도 시인이 뭐라고 하지는 않을 꺼야."권상훈이 자신 있게 답을 한다. "배고픈 고학생과 부잣집 딸이 만나서 결혼하는 예는 종종 있었지. 따지고 보면 전쟁 때문에 민족 전체가 피해자였으니까 신분상의 차이가 결혼까지 방해하는 결격사유로 작용하지는 못한다 이거야. 그것 보다 이 시인과 지게꾼의 관계가 예사롭지는 않아."최형규의 추리에 권상훈이 예상 못한 가정을 들고 나온다."지게꾼과 임태식이 동일 인물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그렇게 비약하다 보면 이기도 시인과 박기수도 동일 인물이라는 얘긴데. 그건 아무래도 지나친 비약 같아."한이 석이 상훈의 가정을 조심스럽게 다듬어 간다. 이기도와 박기수. 지게꾼과 임태식. 황당하면서도 말이 안 되는 가정 같지는 않았다. 상훈의 비약이 도리어 현상을 바로 보는 접근법 같기도 했다. 최형규가 나름의 논리로 상훈을 거들고 있었다."지게꾼이 흔하지 않은 요즈음에 그것도 서울역에서 사고를 당한 지게꾼과 이기도 시인.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 그냥 넘어 가기에는 석연치 않은 일이 한둘이 아니거든.""자네의 말 대로라면 지게꾼과 임태식이 동일 인물일 수 있다는 것이 우연 보다는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것처럼 들리는데... 어때, 나를 이해 시켜줄 수 있나?"한이 석이 논리로 가정의 희미함을 풀어 달라고 최형규에게 도전한다. 나는 그들의 대화가 자칫하면 감정을 상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중재자로 나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날카로운 추리보다는 술과 안주였다. 잔뜩 긴장한 신경을 이완 시켜야 갰다는 생각에 술과 따끈한 국물을 부탁하며 주인에게 물었다."그런데 임태식이 사고 당한 것이 언제였나요? 택시에 받친 것 말입니다.""낙엽이 쌓이고 추위를 느끼는 계절이라고 했으니까 늦가을 아니면 초겨울쯤 되었을 꺼야. "권상훈이 가로질러 대답하였다."이 시인이 자살을 한 것이 1월. 두 달의 간격을 두고 지게꾼 기사가 나왔다면 11월이 되겠지. 11월이면 임태식이 사고를 당한 늦가을 아니면 초겨울. 시기적으로 뭔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시인과 임태식의 관계는 어떻게 연결을 해야 하지? 박기수라면 몰라도. 박기수!"나는 끝말을 흐리며 박기수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불렀다.이때 포장집 안으로 젊은 아가씨 하나가 들어 왔다. 우리 또래의 그녀는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이었다. 우리에게서 시선을 피하여 사십대의 주인과 무슨 말을 주고받더니 금방 나가 버린다.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고 사라진 그녀의 인상이 누군가 많이 비슷했다."제 딸아이 입니다. 애가 워낙 숫기가 없어서 그런지 파장할 무렵에 다시 오겠다는 군요.."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면서 누가 먼저라 할 것 서로의 생각에 동의를 하였다. 지금 들어왔다가 나간 우리 또래의 처녀가 혹시 현아라는 소녀는 아닐까? 억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사고의 추이를 막을 수 없었다. 여태까지 가정으로 머물렀던 상상들이 확실한 그림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 같았다. 임태식과 지겟꾼이 동일 인물이라는 가정이 거의 사실처럼 믿어지게 되었다. 최소한 우리들에게는 그것이 확실한 현실처럼 되어 버렸다. 어떤 답을 찾아내기 위한 의도적인 발상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이 시인과 박기수가 연결이 되지 않는다. 나의 혼돈을 간파한 듯 상훈이 사십의 주인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저씨! 박기수라는 사람은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답니까?""잘 모르겠소. 임태식이 병원에 있었던 기간의 이야기는 그것밖에 들려주지 않았으니 말이오.""임태식이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 박기수를 다시 만났나요?"상훈이 취조를 하듯 되물었다."나는 잘 모르겠소. 대화는 그것뿐이었고 그 다음 이야기는 나도 들은 바 없소이다." 최형규는 구석에서 말없이 술잔을 비우고 있었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많은지 상당히 고민스러워 보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져 들어가는 사건을 반드시 해결해 보겠다는 그의 집념이 대단했다. 사건의 단서가 되는 여태까지의 이야기를 다시 반추하며 담배를 태우는 그의 모습이 유능한 수사관 같았다. "강형! 아까 이기도 시인과 박기수가 동일인물 같다고 했지? 가능한 가설이야." 형규는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기 위해 꽁초가 된 담배를 끝까지 빨고 있었다. 자신의 뜻대로 우리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설득력 있는 단서를 역추적해 본거니까 한번 들어봐. 이기도 시인이 박기수였다면 혜숙과 예슬이 곁을 떠나서 무작정 상경했겠지. 서울에서도 의지할 곳이 없었고 지식을 위해 식솔을 포기한 이상 고학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발버둥 쳤을 꺼야. 고학으로 가진 고생을 하다가 지금의 부인을 만난 것 같아. 생각해 봐. 입주 가정교사나 그와 비슷한 환경은 누구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현실이거든. 그에게는 지울 수 없는 과거가 있었고 그것이 젊은 날의 그에게 부담이 되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 아닐까? 마치 곪은 부위가 보기 싫어 손을 데다가 흉터가 되어버리는 경우처럼 말이야. 아마도 어떤 계기가 없었다면 과거에 앓은 홍역이나 흉터쯤으로 생각해서 자신만의 비밀로 묻어 버리고 살았을 지도 모르지. 그가 아내와 딸을 찾아 다녔는지, 그것 마저 포기했는지 그의 진실 여부를 알 바는 없지만 추측컨대 그의 삶이 평탄하지는 않았을 꺼야. 생각해 보면 전쟁으로 이산 가족 된 천만의 인구중 하나로 자신을 용납 할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그것도 자신을 완전하게 합리화시키지는 못했을 꺼야. 과거는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요 떼어낼 수 없는 혹이었을 테니까. 그렇게 과거를 뭍고 살다가 정말 우연찮게 자신의 과거를 생생하게 목격한 증인이 나타난 것이지. 임태식! 그것도 뜻하지 않는 사고로 만나게 되었으니 운명의 장난은 짓궂은 거야. 임태식의 등장으로 원하지 않던 과거가 드러나게 되었고 그 상처의 환부가 곪아터지게 된 셈이지. 처음부터 도망쳐온 과거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은 누릴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간직해온 비밀을 외부로 들어낼 필요는 없었거든. 그러나 한 증인의 등장으로 그의 과거가 폭로되게 되었고 아픔의 기억으로 간직해온 과거가 상처보다 위험한 폭탄으로 폭발하게 된 것이지. 혜숙과 예슬이의 비극적인 죽음이 폭탄의 뇌관이 되어서 말이야.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아내와 딸을 버리고 도망쳤던 과거의 죄책감과 임태식의 입으로 전해진 두 사람의 처참한 죽음이 그를 지탱해온 한 가닥 양심의 한계를 완전히 허물어 버린 거야. 한 시대의 양심으로 대변되던 시인으로써 자신의 양심을 속여야 하는 모순과 타협할 수는 없었겠지. 양심의 시를 쓰는 시인이 자신을 먼저 속여야 하는 현실을 붙들고 어떻게 외쳐댈 수 있을까? 그의 고뇌와 고민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견디기 어려웠을 꺼야. 결국 임태식이 들려주는 지난날의 생생한 재현과 과거의 환상이 달려들어 죽음의 판결문을 선고한 셈이지. 그가 내릴 수 있는 최고의 결정은 마치 혜숙과 예슬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과의 인연을 끊어 버리는 거였어. 비극의 끝은 어찌 보면 희극일 수 있지 않겠어? 오래 전에 과거와 함께 묻어버린 아내와 딸을 죽음으로 다시 찾으려 했는지도 모르지. 지금 생각해 보면 '겁내지 마오'의 마지막 구절이 그의 유언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시인이 먼길 떠날 때그것도 즐거움이 아니겠소무거운 짐을 홀가분히 벗어 던지고 마침내 안락의 날을 갖게 되리니...
임태식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이기도 시인은 죽음의 그림자와 동행한 것 같아.사람답게 되어 나타나겠다던 박기수의 말에도 양심의 뿌리가 내려 있거든.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이 시인이 권력이라 해서 비굴해질 수 없었던 것이고 그의 이런 당당한 행동이 그를 양심의 시인으로 자리 매김을 해준 것 같아. 죽음을 바라보는 그의 입장이 관념으로 남아 있다가 임태식의 등장으로 마침내 행동으로 옮겨졌던 거야. 그러니까 이기도 시인에게 죽음의 당위성을 확인시켜 준 사람은 임태식이 되는 거지." 최형규의 논리는 가설이라기 보다는 정설에 가까운 추리였다.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시인은 그의 업적과 상관없이 불순한 무리에 의해 우수겟 거리가 될 것이며 그의 자살도 초라한 죽음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내게 있어서 그 현실이 서글펐다. 과거의 피해의식 속에서 그의 시는 살아 있었고 그의 소리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이기도와 같은 삶을 누릴 수 있었을까? 순수의 가면을 쓰고 거짓과 악마의 짓을 해왔던 우리의 문단에서 그래도 이시인은 죽음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한 셈이 아닌가?나의 생각을 훔쳐보기라도 한 듯 한이 석이 의미 없는 말을 뱉는다. "이 시인이 이름을 바꾼 다음 다른 사람으로 행세했다는 말이야?""그야 간단한 일이지. 전쟁으로 훼손된 서류들 속에서 호적이나 본적을 다시 정리해야 했던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었겠어? 그 과정에서 이름이나 나이를 바꾸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니었을까?"최형규가 설득력있게 한이석의 질문에 답을 한다. 그래도 상훈이 가설의 현실화를 지연시키기 위해 물증을 요구한다."이기도 시인과 박기수가 동일 인물임을 밝혀줄 사람은 임태식 밖에는 없어! 설령 이시인이 박기수라 할찌라도 그의 업적을 간과할 수는 없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안일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을 지라도 이시인은 자신의 말대로 살았던 몇 안 되는 우리 시대의 양심이었지. 자신의 과거가 견디기 어려운 무게로 짓누를 때 우리들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궁색한 변명이나 비겁한 타협을 하지는 않았을까? 자신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을 달리 정해 놓지는 않았을까? 오늘의 가설이 사실이 되어도 세인들은 이시인의 죽음을 고귀하게 간직할 거야.""정말 그럴까? 이시인의 글이 다른 시인과 비교해서 생동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게 부쳐진 양심의 시인이라는 수식어나 찬사는 없어져야 할 꺼야. 그가 죽음을 택한 것도 양심의 소리 때문이었다고 할 사람이 있겠지만 그건 특별한 상황에서 벌어진 예외의 경우였을 뿐이야. 양심을 운운하려면 절대성을 먼저 고수해야지. 상대적인 양심으로 상황을 인정한다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양심적으로 산다고 할 꺼야. 인간적인 배려로 상황을 이해해 봐. 폭군도 현군으로 바뀌고 결국에 죽일 놈은 한 사람도 없어지는 거야.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진리가 변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진리의 절대성 때문이지. 이시인을 절대적인 양심으로 믿었기에 세상 사람들이 그를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 인정한 거야."최형규의 논리는 갈수록 날카로워 졌다. 동생의 죽음을 목격했던 그의 삶에 대한 깊이가 우리보다는 현실적이었고 최소한 죽음을 논할 때 만큼은 진리를 양보할 수 없었다. 어느새 우리의 대화는 최형규와 나머지 셋의 대결 구도로 변하고 있었다. 한이 석이 형규와 대결하려 한다. "그런 식으로 이시인을 매도할 수는 없어! 이기도 시인이 타협을 거부한 이유도 우리의 추측일 뿐이고 그의 죽음도 사실과 다를 수 있지. 형규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죽음으로 과거를 속죄한 그의 결단은 인정해야 할껄. 생각해 봐. 우리 문단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과 행동에 일치를 보일 수 있을까? 그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 시인의 죽음은 뭔가 달라도 다른 거야." 우리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세상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것이며 못된 놈들이 날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나마 세인의 눈을 두려워하여 쉬쉬했던 잡놈들의 눈꼴사나운 짓거리가 다시 판을 칠게 분명하였다. 우리의 대화는 가설을 정설로 인정하고 진행되었다. 이기도 시인의 죽음은 시한 폭탄 같은 것이었고 임태식을 만나면서 정해진 시간의 끝을 알리게 되었다. 뭔가 서글픈 생각이 든다. 우상의 몰락.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인의 결정. 그리고 또 혼란 속으로 쳐 박혀 들어가는 세상. 왠지 모르게 얽혀 가는 것이 찜찜하기만 하다. 스무 해의 젊음에 바른 지표가 되어준 시인의 죽음이 나를 슬프게 한다. 세상이 고작해야 이것밖에 되지 않으니 허무감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와 성격적으로 비슷한 한이 석이 말문을 다시 연다."임태식의 입장에서는 가슴에 한을 품고 다녔기에 어느 정도 정리를 한 셈이지만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뭔가 정말로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말대로 운명이 자신을 지배해 왔다면 그것을 순리로 받아들일 것이지 서울로 왜 왔을까? 어째서 박기수를 찾아야만 했지? 물론 사고로 인해 악연이 다시 이어졌지만 그 긴 세월 속에서도 과거의 응어리가 여과되지 않았던 것일까? 차라리 서로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아. 이시인의 죽음도 그렇지만 박기수의 죽음으로 과연 임태식이 보상받은 것이라도 있을까?""본인이 운명의 피해자이고 언제나 패배자로 남아 있다면 그렇게 쉬운 말로 임태식의 운명을 대신하지는 못할걸."최형규가 한이석을 타이르듯 말한다. "제길 헐. 세상은 왜 이렇게 뒤죽박죽이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도 없고...그런데 아저씨! 그 임태식이라는 사람 그 뒤에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나요?"상훈이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아마 그도 어디론가 가버렸을 꺼요."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사십대의 주인이 이제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해 버린다. "아저씨! 이 곳에서 장사하신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제 기억으로 전에 이곳에서 장사하시던 분은 아주머니였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한이 석이 이 동네 터줏대감이라도 된 듯 대화의 머리를 돌려 별 희안한 질문을 던진다. 최형규가 한의 질문이 다소 경솔하게 들렸는지 정색을 하며 주인을 대신해서 말을 받는다."이 장사 시작하신 지 얼마 안되었다고 하지 않았어? 벌써 취했나 보군 그래. 아저씨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자네 같은 사람한테 심문을 받아야 하나. 점잖게 마시고 사내답게 취해야지!""젊은이 그러지 마시구려. 친해지자고 물어 본 건데 그것 가지고 뭘 그러나. 사실 장사 시작한지는 얼마 안되지요. 몸이 시원치 않아서 다른 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요. 그래서 이 장사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지요."그는 형규의 채근에 도리어 미안했는지 한이석을 감싸주며 장사 시작의 경위를 대충 늘어놓았다. 그의 순순한 대답에 나는 의례적인 질문을 하였다."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지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가릴 것이 있나요? 뭐 이렇다 할 밥벌이만 생기면 닥치는 대로 몸을 던지곤 했답니다.""그나저나 아까 따님이라고 했던 그 아가씨 말입니다. 아주 보기 드문 미인이던데 흐뭇하시겠어요.""......" 괜한 소리를 했나 싶다. 젊은애들의 술안주가 되는 것 좋아하는 아버지를 찾을 수 없듯이 딸을 대화로 끌어들이기 반기는 아버지도 없을 것이다.
2월의 얼굴은 어떤 색깔을 하고 있을까? 추위로 따지면 막바지의 위세로 사람들을 온통 움츠리게 하고, 자연으로 보아 넘기면 계절의 끝에서 다음으로 넘겨야 하는 준비의 시간. 조금만 기다리면 봄소식이 온다. 음침했던 겨울도 서서히 물러가겠지. 기나긴 겨울밤에 무거운 이야기만 오고간다.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린 집착. 우리의 젊음이 가능성의 그것 이라면 집착은 사물을 구태의연하게 만들어 형식적으로 끝나기 쉽다. 우리들 모두가 이런 집착에 빠진 것은 아닌지? 사건을 풀어 보겠다는 집착이 이곳을 찾았던 애초의 의도를 변질시키고 있었다. 하기야 어차피 방황하는 젊음이라면 지금의 상황도 방황의 그것으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술이 점점 올라온다. 이기도 시인의 자살과 그 뒤에 숨겨 있는 비밀들. 비록 가설이지만 박기수가 되어버린 그의 과거. 무엇인가 지탱하려는 고집스런 사고의 날카로운 신경이 술로 풀려간다. 알콜 입자가 나의 호흡과 더불어 밖으로 흘러나온다. 어지간히 마셨는지 호흡이 쉽지는 않았다. 비교적 약해 보이는 한이 석이 얼굴을 파 묻더니 어깨를 들썩거린다. 점잖게 취하자는 최형규의 말이 떠오른다. 한이석은 자신의 앞자리에 여태까지 퍼 마셨던 것을 그대로 토해내고 있었다. 대화 속으로 몰입하는 동안 우리는 열 두어 병의 소주를 비워버린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눈빛이 풀려가고 있었다. 아, 괴로운 현실. 술로 지탱해야만 하는 세상. 술 권하는 사회. 한 사람의 낙오자가 나타나더니 이내 전염이라도 된 듯 이번에는 권상훈이 입을 틀어막고 급하게 바깥으로 뛰어나간다. 대화의 긴장감에서 풀려나자 하나 둘씩 취해버린 신체적 현상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최형규가 뒤따라 나가서 상훈의 등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보면 볼수록 연약한 우리의 젊음. 겨우 몇 병의 소주로 백기를 들어야 하는 젊음이 부끄럽고 그 현실 또한 쓸쓸하다. 여자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에 최형규도 취기를 못이기고 옆으로 쓰러진다. 어떤 맞물림이 갑자기 어긋나기 시작했다. 비록 서로 다른 술좌석에서 하나가 되었지만 그 끝은 처음같이 타인이 되어야 했다. 한이석은 뱃속을 비운 것이 개운했던지 어느 정도 제정신을 차린 뒤 옆으로 쓰러진 최형규를 부축하여 자리를 뜨려한다. 최후의 증인으로 남아있는 나를 발견한 그는 작별의 말을 던진다."강형 우리 언제 한번 만납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나 좋은 시간을 나눈 것도 우연은 아닐테니 서로 좋은 친구가 되도록 합시다. 화쟁이와 글쟁이가 자주 만나면 그럴듯한 작품이 나올 것 같으니 한번 연락해 주시오. 화실 전화번호를 드릴테니 연락해서 꼭 만납시다. 형규녀석이 재만 뿌리지 않았더라면 이제부터 강형이랑 한잔하려 했었는데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소.""그럽시다." 나는 엉겁결에 대답을 하였고 한이석은 주머니에서 꾸겨진 돈을 꺼내어 계산을 한 뒤 최형규를 부축하여 밖으로 나갔다. 그들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기 위해 나도 잠시 밖으로 나왔고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벌써 밤이 꽤나 깊었다. 불빛이라고는 이 포장집을 맞대고 있는 이웃밖에 없었다. 술꾼들. 어둠 속에서도 힘겹게 버티고 있는 불침번 들. 한이 석이 남기고 간 좋은 친구가 되자는 바로 그 말. 젊음은 언제나 쉽게 융화되어서 좋다. 술집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대화를 사이에 두고 쉽게 가까워 그 젊음. 그림을 그린다는 그가 왠지 날카롭게 느껴진다. 화가의 본능과 시를 이해하는 미학이 그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우리에게 친구라는 단어처럼 가슴 뭉클하게 하는 것도 없다. 설익은 인생에서 우리가 경험한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친구. 우정. 한이 석이 떠나면서 남긴 느낌이 바로 그것 같다. 혼미하다. 술기운이 몸 전체로 퍼져서 몸 하나 가누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제 이 좁은 공간에 남은 인류는 셋. 권상훈은 의식을 잃었지만 술기운으로 뭔가 중얼거리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도 이기도 시인의 죽음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모든 사고의 시발점은 이기도 시인의 시로 비롯되었다고 한 적이 있는 상훈에게 있어서 시인의 죽음은 사고의 몰락과 다를 바 없었다. 그만큼 사랑했던 님이었는데 그가 자살을 했고 그 비밀을 우연찮게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엄청난 충격인가? 이시인의 죽음. 나는 돌연 사십대의 주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지막 남은 나의 대화자가 되어야 할 그 사람."마지막으로 남은 셈이군. 한잔 받으려나?""많이 마셨습니다. 그만 하지요.""그러면 한잔 따라주게.""빈 잔이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군요. 자, 한잔 받으시지요!"내가 따라준 소주를 받아든 그는 술잔을 달콤하게 빨아 댄다. 술의 입자까지 음미하려는 그의 노력이 술을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고 있다. 쓰디쓴 소주라 할지라도 그에게는 초콜릿보다 달콤할 것 같았다."한잔 받지 그러나."마지막 한 방울까지 핥은 술맛이 혼자 마시기에 아쉬운지 내게 다시 권한다. "정 그러시면 한잔만 주십시요.""한잔 마시고 뜨거운 국물을 들이키면 속이 풀릴걸세."받은 술잔을 비우고 그의 술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고마운지 그가 부드러운 말로 한동안 끊었던 말을 잇는다."친구는 변함없는 최고의 믿음이지. 지금은 건성으로 들리겠지만 살다보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점점 절실해 질걸세." 그는 팔팔 끓는 국물을 내 앞으로 내어놓으면서 자신의 경험적인 조언을 했다. 나는 상훈의 축 늘어진 어깨를 두들기며 뜨거운 국물을 그에게 권했다. 더 이상 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상훈은 내가 권하는 국물을 술로 착각하고 팔을 내저으며 싫다고 했다. "더러운 세상! 씨-이-팔. 더 이상 마실 수 없으니까 그만!" 그 순간 상훈이 휘두른 팔이 끓는 국물 그릇을 공중으로 날려 버렸다. 아차 하는 순간 반대쪽으로 날아가 사십대의 주인에게로 향하였다. 나는 때늦은 경고로 그를 주의 시켰지만 그것이 도리어 봉변을 당하게 한 꼴이 되었다. 상훈이 휘두른 그릇이 사십대 주인의 정면으로 날아가 얼굴을 덮으려 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앗 뜨거!"당황한 쪽은 도리어 나였다. 상훈 녀석은 만취해서 의식을 잃은 지 오래 되었고 나의 생각 없는 행동으로 순식간에 봉변을 당한 주인 아저씨를 생각하니 당황스러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얼굴이 아니라 손이었고 더구나 한 쪽이라도 목장갑을 낀 상태 였으니 말이다. 나는 위로 반 변명 반의 말로 그를 거들었다."아저씨 괜찮겠습니까? 뭐라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우선 장갑과 웃옷을 벗은 다음 찬물로 씻도록 하세요." "별로 걱정할 일은 아니겠는데...""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아무리 겨울이지만 화상을 잘못 다루면 곪아서 무척 고생합니다. 이리로 오십시오. 제가 조심해서 벗겨 드릴께요.""그래 주려나?" 아직까지 김이 피어오르고 있는걸 보면 어지간히 뜨거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응급 조치를 위해 앞에 있는 수건을 들어 찬물로 적셨다. 그리고 물수건으로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닦기 시작했다. 먼저 왼손을 자세히 보니 물집이 생기긴 했어도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이다 싶어 이번에는 오른 손을 내밀게 했다. 그가 내민 목장갑이 아직도 뜨거웠다. 물수건을 내려놓고 오른손 장갑을 조심스럽게 벗겼다. 오른쪽은 손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몰골이 사나왔다. 장갑을 끼고 있던 손이라서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을 텐데 왼손보다 상처가 훨씬 심했다. 물수건으로 그의 오른손도 깨끗이 씻어 주었다. 나는 빠른 동작으로 그의 웃옷과 내의를 벗기고 새물로 다시 행군 물수건으로 상처 부위를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왼손. 오른손. 앞가슴. 당황한 가운데 응급조치를 한 셈이다.일단 한 숨을 놓자 나의 시선이 몰골 사나운 그 오른손에 머물렀다. 뭔지 모르게 심상치 않은 점이 있었다. 단순한 화상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깊은 흉터가 오랜 시간을 통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다시 한번 박기수와 임태식의 과거를 좇아서 여행을 떠났다. 박기수가 최헤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던 날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임태식은 박기수에게 수모를 당하였고 그것 때문에 박기수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그후에 임태식은 깨우쳤지. 세상은 머리로 살아가는 곳이라고. 세상은... 이어 그는 돌을 들어 자신의 손등을 내리쳤다. 세상은 머리로 사는 곳이라고 몇 번이나 외치면서. 임태식의 오른손. 분수처럼 피가 흘러내리던 그의 손. 피가 흐른다. 임태식의 오른손에서 피가 흐른다. 나는 임태식의 손을 떠올렸다. 피가 흘러내리는 으깨어진 손을. 그 몰골 사나운 으깨어진 손을 여행이 끝난 후 다시 보았다. 이 사십대 주인의 것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시간 여행의 끝. 현실로 복귀. 포장 마차. 끓는 국물. 나는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그렇게 갈망하던 비밀의 실상을 내 혼자의 눈으로 목격한 것이다. "아저씨!""......""임태식?""......""아까 그 아가씨는... 임현아?""......"그의 침묵은 여태까지의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고 가설의 현실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순간 뒤통수를 심하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이 엄청난 순간을 홀로 목격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더 이상 어떤 질문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속해 있는 곳에서 마치 별자리를 지키듯 충실히 앉아 있었다. 갑자기 상훈의 존재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이 절대 공간에서 사십대의 그와 이십대의 나만이 존재하고 있었다.임태식과 나. 이시인의 삶을 지켜보았던 임태식과 나.이기도와 박기수를 하나로 연결시켰던 임태식.그리하여 박기수에게 바람직한 기회를 건네 준 임태식.임태식에게 박기수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는 그 친구를 믿음으로 기다려 왔다.박기수는 친구의 곁을 떠나 삼 십 년 동안 침묵으로 과거를 뭍어왔다. 이시인의 마음속에도 절대적 믿음이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과 동고동락했던 친구에 대한 우정이 그의 믿음이었다. 그 우정을 생각하니 임태식이 거인이 되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세상과 어떤 식으로도 타협할 수 있었던 임태식이 친구의 비밀을 가슴에 뭍고 살았던 것이다. 죽음의 순간까지 친구를 위해 비밀로 지키려 했던 이시인의 과거. 그러나 운명은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는 일을 벌려 놓았다. 엉켜있던 운명의 실타래를 바로 펴놓으려고 운명 스스로 자구책을 찾아낸 것이다. 각자의 몫을 스스로 해결할 기회가 운명에 의해 두 사람의 손에 쥐어진 것이다. 임태식은 박기수를 만나서 과거의 상처와 굴레를 벗어 던졌고 박기수는 이기도 시인으로 행세했던 가면을 벗고 본래의 박기수로 되돌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의 인생으로 그늘과 음지를 마다 않고 살아왔던 한 사람.전자보다 더한 피해의식으로 살면서도 세인들의 찬사와 찬미를 받았던 또 한 사람. 그는 벙어리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 벙어리가 언어를 익혀 처음으로 그의 진심을 세상에 들려주었던 것이다. 한 시대를 어둡게 살았던 두 사람.빛과 어둠의 양면을 보여 주었던 삶의 증인.
지금까지의 부서진 말들은 영락없는 치기였다. 버거운 젊음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방황을 찬미하여 환상을 쫓던 얼마 전까지의 나날이 그저 부끄러웠다. 관념의 노예가 되어 현실을 부인했던 과거가 더없이 서글펐다.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시간 여행에 연습이 없건만 오늘까지 나는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허공을 응시하던 초점 없는 눈에서 이슬이 비친다. 허망하다. 치욕의 냉기가 온몸을 감싼다. 임태식으로 향했던 시선도 더 이상 한 곳에서 머물 수 없었다. 거인과 생쥐.임태식의 시선에는 위엄이 있었다. 바로 몇 시간 전에도 찾을 수 없었던 그것이 단 둘 뿐인 상황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다. 지게꾼으로 살아왔던 과거 앞에 나의 왜소함이 밝은 대낮에 드러나는 것 같았다.이기도 시인이 나를 부른다.
- 죽은 걸로 하오.
죽은 걸로 하오.지나간 과거 일랑.눈물로 달랜 넋밤이면 달려오는 부끄러운 나날들모두 죽은 걸로 하오.
들추려 하지마오숨겨진 지난 날을거짓 행세에다른 삶에 매일 죽어가는양심이 있으니
시궁창에 던져버리오과거의 상흔을바람에 날리울소문에 떠다닐옘병잠에서 깨어양심을 죽이리니
죽은 걸로 하오지나간 과거 일랑.사랑으로 품은 가슴새벽으로 도망가니 돌아올 날 위해모두 죽은 걸로 하오.
임태식의 시선이 나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이 점점 강렬해 진다. 시인으로 한 시대를 누렸던 이기도의 최후와 함께 했던 그 강렬한 시선이 초라한 젊음을 내려다본다. 그가 나의 젊음 앞에 손을 내민다. 흉측하지만 부드러운 그것이 힘있게 나의 것을 잡는다. 온몸에 전율이 온다. 우리는 말없이 한참 동안 손을 잡고 있었다. "젊은이!""......""죽은 걸로 하오.""......"그의 말에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자신의 과거를 묻어 달라는 뜻 같았다. 숙연하기 까지 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어설픈 말로 완전한 느낌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언어의 동의가 아니라 혼의 일체였다. 숨막히는 긴장감이 호흡을 조심스럽게 하였고 그 숨의 절제가 잔잔한 쾌감을 주었다. 언어의 낭비와 무절제한 젊음으로는 찾기 힘든 없음의 진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기고 있었다. 모자람의 철학이 바로 이것 같았다. 주체 못할 젊음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앞날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상훈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인사 불성이던 그가 우리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벌레처럼 움직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힘주어 잡고 있던 서로의 손을 놓았다. 상훈이 머리를 밑에 박고 올각질을 한다. "집으로 데리고 가야겠군.""......"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훈을 어깨에 끼고 포장집을 나서려 할 때 등뒤로 들려 오는 소리가 있었다."죽은 걸로 하오."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설픈 말보다 그 편이 옳을 것 같았다. 상훈과 함께 바깥으로 나오자 언제부턴지 하늘에서 뭔가 떨어지고 있었다. 눈이었다. 격동의 순간을 지켜왔던 자연이 때늦은 선물을 지상으로 보내는 것 같았다. 겨울 내내 마른 하늘로 삭막하던 도시가 포근한 털옷을 입는다. 눈발이 점점 커진다. 바람이 없는 밤이라 제법 쌓이고 있었다. 겨울의 끝에서 다시 보는 눈이 무슨 말을 하고있는 것 같았다. 귓가에 환청이 들린다. 분명 속삭임은 아니었다. - 죽은 걸로 하오!이기도와 임태식이 하나가 되어 나를 붙들고 있었다.눈 내리는 하늘을 향해 무슨 대꾸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그런데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소리 없이 내려오는 하얀 진실이 나를 대신해서 무슨 말을 한다.
새벽 눈길에 초라한 젊음 둘이 휘청대며 걸어간다. 밤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기억의 사건으로 흘러간다.임태식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기도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 죽은 걸로 하오.눈발이 앞을 가린다.머뭇거리며 뒤를 돌아보니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새벽 눈길에 술취한 젊음이 휘청대며 걸어간다.환청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죽은 걸로 하오.이기도 시인이 나를 부른다.
죽은 걸로 하오지나간 과거 일랑.사랑으로 품은 가슴새벽으로 도망가니 돌아올 날 위해모두 죽은 걸로 하오.
끝.
- 終 -
눈 내리던 밤 젊음의 방황은 끝으로 간다. 한 시인의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새롭게 하고 싶었다. 그해 겨울을 보내고 나는 군대로 간다. 새로운 젊음의 시작을 위해.




Janus의 초상

하나의 얼굴로 살기에는 너무나 벅찬 삶이기에
밤마다 다른 얼굴을 하나씩 만들어 갑니다.
그대 나와 뜻을 함께하면 어둔 밤의 달을 보고 웃음을 지어 보소.
밤으로 잇는 월광 아래 힘든 호흡하는 망혼의 존재를 몸으로 느낄 것이오.
하나의 얼굴로 살기에는 참으로 지친 삶이기에
날마다 새로운 얼굴을 하나씩 더해 갑니다.
그대 나를 옳다 생각하면 검은 밤의 별을 보고 소리를 질러 보소.
새벽으로 가는 별빛 아래 눈물 흘리는 시신의 곡성을 가슴으로 들을 것이오.
하여 얼굴 하나 더하여 사람 한번 놀리고
얼굴 하나 만들어 세상 한번 놀리고.

댓글 없음: